자녀들 용돈 차별하면 불법입니까?(feat.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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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이광선 변호사의 '노동 프리즘'

위 내용은 가상의 상황이다. 실제로는 자녀 간 용돈 차별이 문제가 될 수 있더라도, 법원이 가정사에 지나치게 개입하여 위법으로 판단할 가능성은 낮다. 이는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법언(法言)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제도가 ‘사적 자치의 원칙’이고, 노사 간의 합의는 사적 자치에 기초하므로 강행법규에 명백히 위반되거나 사회질서에 위반되지 않는 한 유효하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다(대법원 2006. 6. 15. 선고 2004다36052 판결 등).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각 회사의 기존 근로조건은 원칙적으로 존속회사에 그대로 승계된다. 이에 따라 합병 이후에도 두 회사의 취업규칙과 근로조건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대법원 2004. 5. 14. 선고 2002다23185 판결 등). 그러나 합병 장기간에 걸쳐 급여 격차가 지속되면 근로자들 사기 저하 및 조직 내 갈등이 우려되므로, 노사 간 자율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해소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급여차이가 법적으로 위법한지의 문제는 별개로 검토되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수원지방법원은 합병 후 동종·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존속법인과 소멸법인 소속 근로자 간의 급여 차이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수원지방법원 2024. 7. 17. 선고 2023가합10039 판결, 이하 ‘대상판결’). 해당 사건에서는 합병 후 3년째 되던 해, 노사합의를 통해 양사의 호봉체계를 통일하면서 노사합의 당시의 시급을 기준으로 존속회사의 호봉표에 맞추면서 소멸회사 소속 근로자들이 존속회사 근로자보다 동일한 연차 대비 낮은 호봉을 부여받았다. 대상판결은 합병 후 노사합의로 호봉을 정리하였음에도 동종·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동일한 연차 간에 호봉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반되어 무효이고, 심지어 단체협약에 따른 노사합의도 강행규정 또는 선량한 풍속 기타사회질서에 위반되면 효력이 부정되므로 노사합의가 있었다는 점만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앞서 본 자녀 용돈 차별 사례와 같이, 합병으로 발생한 근로조건 차이는 노사 간 스스로 시간을 두고 해결할 문제이다. 사적 자치에 기초한 노사합의는 강행법규 또는 사회질서에 위반되지 않는 한 유효하다는 오랜 판례의 취지에 따라, 법원이 이를 쉽게 무효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고, 남녀고용평등법의 목적(제1조)은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남녀 근로자 간 임금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다. 대법원도 오랫동안 “구 남녀고용평등법의 입법 목적에 비추어 보면, … 남녀근로자가 제공하는 노동이 동일한 가치임에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여성근로자에 대하여 남성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할 경우 … 구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를 위반하는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해 왔다(대법원 2003. 3. 14. 선고 2002도3883 판결, 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0다101011 판결 등). 즉,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모든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일반원칙이 아니라 ‘남녀근로자 간’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 대법원은 2019. 3. 14. 선고한 ‘시간강사 판결’(2015두46321)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을 남녀 간 비교를 넘어 사업장 내 모든 노동 간 비교로 확대하여 해석하였다. ‘동일가치노동’에 대해 정의를 내리며 기존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0다101011 판결)을 인용하면서도 그 인용한 판결에서의 정의와 달리 “당해 사업장 내의 서로 비교되는 남녀 간의 노동”이 아닌 “당해 사업장 내의 서로 비교되는 노동”이라고 하며 ‘남녀 간의’ 부분을 뺐다. 이는 기존 판례나 입법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 저촉될 위험이 있는 해석이다(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제1항을 위반하면 형사처벌 조항이 있다). 이와 같이 오랫동안 유지돼온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려면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 당연히 전원합의체 판결을 했어야 했다.
더 나아가 대상판결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남녀 차별 이외의 다른 유형의 차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명시하면서 그 근거로 위 시간강사 판결을 인용하며, 노사합의조차 무효로 판단했다. 이는 남녀고용평등법의 입법목적을 넘어선 해석으로,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새로운 입법에 가까운 판단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위반시에는 민사상 책임 분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므로, 그 적용 범위는 명확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시간강사 판결이나 대상판결에서 제시한 ‘동일가치 노동’의 판단기준인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을 비롯하여 근로자의 학력·경력·근속연수 등’은 ‘성별 차별’과 같이 명확하지도 않고 쉽게 판단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일반 차별의 원칙으로 삼으려면 법을 변경하거나 최소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명확하게 시장의 혼란을 막아야 할 것이지, 현재와 같이 남녀고용평등법에 규정된 원칙을 쉽게 일반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판결들의 문제점과는 별개로 이제 회사들은 동일한 가치 노동에 대해 합리적 이유가 없는 한 모든 근로자에게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할 수도 있는 리스크를 인식하고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