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反유대주의 근절 요구 거부한 하버드대…보조금 동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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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독립성 훼손 안될 말"
미국 정부 몇시간만에 보조금 동결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14일(현지시간) 교내 커뮤니티에 보내는 글에서 "우리 대학은 독립성이나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놓고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어떤 정부도 사립대학이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지, 누구를 입학시키고 고용할 수 있는지, 어떤 연구와 탐구 분야를 추구할 수 있는지 지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BC 방송 등 미 언론이 보도했다.
하버드대는 지난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가자지구 전쟁 반대 시위 이후 백악관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됐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2월 반유대주의 근절을 위한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등 '반유대주의 사건'이 발생한 10개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미 당국은 하버드대와 맺은 2억5560만달러(3800억원 상당) 규모의 계약과 87억달러(12조8000억원 상당) 규모 보조금 지급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학교 측에 통보했다. 당시 린다 맥마흔 교육부 장관은 "하버드대는 여러 세대에 걸쳐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자 열심히 공부해 입학 허가를 받으려는 전 세계 학생들에게 포부의 정점이 돼 왔다"면서 "반(反)유대 차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해 하버드대의 평판이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또 하버드대에 '지속적인 재정 관계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9가지 조치 실행'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다양성·평등·포용(DEI) 프로그램 폐지, 입학 규정 변경, 이념적 견해를 이유로 특정 학생, 교수진 '세력' 채용 및 억제 등이 포함됐다.
하버드대는 앞서 반유대주의를 막기 위해 시위 주도 학생 징계, 일부 교수진 해임 등 조치를 실행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새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들도 연방 재정지원 삭감 위협을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로 간주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제소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는 하버드대를 비롯해 미국 내 60개 대학에 서한을 보내 캠퍼스에서 유대인 학생을 보호하지 못하면 민권법에 따른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버드대가 대학 독립성이나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두고 협상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지 몇시간 만에 미국 정부는 즉각 대응했다. 미국 행정부 내 '반유대주의 근절을 위한 합동 태스크포스'는 이날 성명에서 트럼프 정부는 하버드대에 수년간에 걸친 보조금 22억달러와 계약 6000만달러(약 854억원)를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태스크포스는 "하버드대의 오늘 성명은 우리나라의 최고 명문 대학에 만연한 문제적인 권리 의식, 즉 연방 정부 투자에는 시민권법을 준수할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최근 몇 년간 캠퍼스를 휩쓴 학습 차질, 유대인 학생들에 대한 괴롭힘은 용납할 수 없다며 명문대학들이 납세자의 지원을 계속 받으려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