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으로 표현한 온화한 자연…석난희의 60년 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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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난희: 그림 속의 자연
앵포르멜 전형 답습 않고
자연이란 주제에 집중해
자신만의 작품세계 구축
7월 6일까지 성곡미술관
스승 김환기 드로잉도 걸려


서울 신문로2가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석난희: 그림 속의 자연’은 석난희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감상할 기회다. 60년에 걸친 화업을 아우른다는 점에서다.
석난희 회화의 바탕은 추상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스승의 영향만 받았다고 할 순 없다. 석난희가 한창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던 1950~1960년대 한국 화단은 한마디로 앵포르멜(추상 표현주의) 시대였다. 어지러운 사회와 정치적 불안 속에서 젊은 화가들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토해냈다.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 ‘누드’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상회화에 속하는 누드를 두고 화가의 추상 표현주의 화풍을 설명하는 게 다소 모순적이지만, 그림을 보면 이해가 간다. 여성의 신체를 그렸다기보다 사람이 내뿜는 기운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여서다.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단순한 인물 묘사가 아닌, 생명체가 지닌 기운이 인체를 에워싸며 종내에는 굳이 인물이라는 대상일 필요가 없는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석난희는 유행을 답습하지 않았다. 우울하면서 격렬하고 뜨겁게 타오르는 게 당대 앵포르멜이라면 석난희의 그림은 한마디로 온화하다. 그의 예술적 언어가 실존의 불안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데 중점을 뒀고, 붓질과 먹 선에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담았기 때문이다. ‘자연’이라고 이름 붙은 연작에서 동양적 서예나 문인화적 기풍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석난희 회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포인트는 고집이다. 캔버스에 그린 회화에서 목판화, 석판화 등 매체는 바뀌지만 60년 화업을 관통하는 것은 오직 추상표현이기 때문이다. 석난희가 1964년부터 약 5년간 파리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한국 화단에서 앵포르멜은 한물간 미술 취급을 받았고, 기하학적 추상과 모노크롬이 부상했다. 이런 와중에도 석난희는 파리에서 배운 석판화 기법을 활용해 독창적 표현 방식을 발전시키고, 자연을 탐구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김환기가 그려준 ‘난희얼굴’과 화가 석난희의 출발점인 ‘누드’에 얽힌 일화도 재밌다. 석난희는 ‘난희얼굴’을 액자로 보관했고, 훗날 김환기미술관이 개관할 때 기증했다. 마침 마땅한 수묵 작품이 없던 터라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 여사(1916~2004)가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누드’는 이대원 화백(1921~2005)이 홍익대 총장을 할 당시 총장실에 걸어뒀다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기증 이후 이 작품이 전시를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0일 전시장에서 만난 석난희는 “이 작품을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며 “앞으로 그림을 계속 그려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7월 6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