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위기의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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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가 베트남을 챙긴 것은 미국과 사사건건 부딪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을 대신해 ‘세계의 공장’ 역할을 맡을 나라가 필요하다고 판단, 베트남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미국의 지지에 힘입어 베트남은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이 나라의 대미 무역흑자는 1235억달러(약 176조원)로 전년보다 18.1% 증가했다. 흑자 규모는 중국과 유럽연합(EU), 멕시코에 이어 4위지만, 증가율에선 단연 1위다. 뉴욕 월가에선 ‘미·중 무역분쟁의 최대 수혜자가 베트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이 중국산 상품의 대미 우회 수출 경로로 활용되고 있다며, 46%에 달하는 초고율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공장을 짓고, 미국에 완제품을 수출하는 베트남식 경제성장 모델이 작동을 멈출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베트남은 부랴부랴 미국산 수입품의 관세 철폐를 선언하고, 미국에 세금 부과를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중국이 그 틈을 기민하게 파고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그제 베트남을 방문해 미국의 관세 압박에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베트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자국 기업이 중국산 부품과 원자재에 의존하는 탓에 시 주석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쉽지 않다.
베트남의 행보는 한국에도 중요하다. 국내 제조 대기업의 생산기지들이 베트남에 집중돼 있어서다. 박닌성 등에 공장을 둔 삼성은 현지 고용 인원만 20만 명에 달한다. 미국의 베트남 관세가 원안대로 확정되면 우리 기업의 대미 수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베트남의 관세 위기 극복은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