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협상, 먼저 타결할수록 유리"…韓 "시간 쫓기지 않겠다"

반도체·의약품 관세 임박
동맹 5개국과 우선협상

韓·日·英·호주·인도에 '우선권'
동맹국과 중국 압박하겠단 의도
"우리 최종 표적은 中" 재차 강조

"알래스카 LNG·비관세장벽 등
韓, 미국에 성의 보여야" 의견도
日은 "서두르면 망친다" 장기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 등을 겨냥해 “가장 먼저 협상을 타결하는 나라가 최고의 합의를 하게 될 것”이라며 조기 협상 타결을 압박하면서 한국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협상을 빨리 시작하되 국익 극대화를 우선순위로 두고 시간에 쫓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韓, 5대 우선협상국에 포함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동맹국과 먼저 움직이는 나라(first mover)에는 이점이 있을 것”이라며 “보통 가장 먼저 협상을 타결하는 사람이 최고의 합의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베선트 장관이 한국 일본 호주 영국 인도 5개국과의 협상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1일 베트남과 무역 협상을 시작한 데 이어 16일 일본, 다음주 한국과 협상에 들어간다. JD 밴스 미 부통령은 “키어 스타머 내각과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영국과도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50여 개국이 미국에 관세 관련 협상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우선협상국으로 꼽은 5개국은 미국의 최상위 동맹이거나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로 묶인 나라다. 이 때문에 미국이 동맹 및 우방과 먼저 무역협상을 마무리한 뒤 이를 토대로 중국을 압박하려는 전략을 세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베선트 장관은 9일 “일부 동맹국과 합의에 도달한 뒤 하나의 집단으로 중국에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중국은 우리의 최대 경제 경쟁국이자 군사적 라이벌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협상은 다른 나라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또 “환율 조작, 임금 및 시설투자 보조금 등 과제가 한가득”이라며 각종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협상 형식과 관련해서는 “실제 무역 문서(협정)가 아닐 수 있다”며 “원칙적 합의가 이뤄지면 거기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앞으로 부과할 반도체, 스마트폰, 의약품 관세와 자동차 부품 관세를 협상 카드로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에선 협상 신중론 우세

한국 통상당국은 ‘빨리 협상에 돌입하되 국익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한국 통상당국은 그동안 일본 대만 등 상황이 비슷한 국가의 대응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협상에 임하자는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미국 측이 동맹국과 먼저 협상 테이블을 차리겠다고 선언하고 ‘먼저 협상하는 국가가 유리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하면서 당장 협상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국장급 대화 채널과 비공식 라인을 통해 미국과 계속 소통하고 있다”며 “오히려 미국이 90일간의 상호관세 유예 기간에 의미 있는 협상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 등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를 대미 관세 협상 패키지에 넣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사업성 검토 등을 위해 현지 출장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말 그대로 사업성 타진을 위한 방문이란 것이다.

정부 내에서는 신중하게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정부 관계자는 “농산물은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한 데다 국회 동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먼저 결과를 도출했다가 상대국보다 내용이 나빴을 때 미칠 후폭풍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인엽/김대훈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