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올라탄 소부장…1년새 영업익 7배로 늘었다

K공급망 리포트
(2)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 집중분석

칩 묶고 쌓는 패키징 각광
한미반도체·오로스테크 등
SK하이닉스 장비社 실적 폭발
반도체 라인 가동률 상승하자
케이씨텍·동진쎄미켐도 수혜

삼성·파운드리 의존社는 한숨
지난해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의 실적은 대체로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최악의 침체기인 2023년을 지나며 일반 메모리 반도체뿐 아니라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해서다. 특히 개별 칩을 생산하는 전(前)공정보다 칩을 묶고 쌓는 후(後)공정 업체에 수혜가 집중됐다.

반면 HBM 호황에서 소외되거나 신규 투자가 줄어든 파운드리 관련 기업은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극명한 온도 차를 보였다.

◇함박웃음 지은 후공정 기업

지난해 반도체 소부장 기업의 실적을 가른 핵심 변수는 HBM이었다. HBM은 ‘단층집’인 D램을 마치 ‘아파트’같이 고층으로 쌓은 반도체다. 개별 D램으로 구성된 층과 층 사이는 엘리베이터처럼 연결한 실리콘관통전극(TSV)으로 연결한다. 이 때문에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개별 칩을 완성하는 전공정보다 칩을 쌓는 후공정이 더 중요하다. 특히 HBM 칩을 수직으로 쌓는 데 필수적인 열압착 장비(TC본더)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TC본더를 SK하이닉스에 독점 공급해온 한미반도체가 HBM의 최대 수혜주로 등극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매출(5589억원)과 영업이익(2554억원)을 내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영업이익률은 45.7%에 달했다.

칩과 기판을 연결해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마이크로솔더볼(MSB) 분야 세계 1위인 덕산하이메탈도 기사회생했다. 지난해 매출이 2359억원으로 전년(1445억원) 대비 63% 증가했고, 2023년 110억원에 달했던 영업적자는 1년 만에 186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HBM 수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테스트(검사 및 계측) 장비 수요도 급증했다. HBM은 세대가 발전하면서 적층 단수가 8단, 12단, 16단으로 늘어나 결함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테스트 장비 업체인 오로스테크놀로지는 지난해 매출 614억원, 영업이익 61억원을 기록했다. 1년 만에 매출이 35%, 영업이익은 154% 뛰었다. 이 회사는 HBM 공정에서 TSV의 완성도를 정밀 계측해 수율을 높여주는 오버레이 장비를 생산 중이다.

원자 단위 계측을 돕는 원자현미경 업체인 파크시스템스의 작년 매출은 1751억원으로 전년 대비 21%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9% 증가했다. 테스트 핵심 부품인 프로브카드를 제작하는 티에스이도 지난해 39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흑자 전환했다.

◇미소 띤 전공정 업체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률이 상승하며 전공정 분야 소재 업체들도 반등했다. 반도체 공정 1단계인 웨이퍼 연마용 소재를 공급하는 케이씨텍은 지난해 매출 3854억원, 영업이익 49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34%, 52% 늘었다.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노광 공장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분야 국내 최대 기업인 동진쎄미켐도 1년 전보다 매출(7%)과 영업이익(18%) 모두 증가세를 나타냈다.

웨이퍼에서 특정 물질을 제거하는 식각 소재 등을 생산하는 이엔에프테크놀로지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93억원으로 1년 만에 갑절이 됐다. 웨이퍼에 얇은 막을 입히는 증착 공정에 필요한 세라믹 히터 장비를 제조하는 코미코는 지난해 매출(5071억원)과 영업이익(1125억원)에서 모두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메모리 반도체 선단 공정과 연계된 업체들도 고공행진을 했다. 초미세 공정이 한계에 도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관련 투자를 늘렸기 때문이다. 식각 장비 부품을 만드는 한솔아이원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182% 급증했다. 증착 장비 업체인 유진테크와 식각 장비사인 피에스케이의 영업이익 증가율도 각각 152%, 55%에 달했다.

◇파운드리 의존도 높은 곳은 울상

반도체 소부장 업체가 모두 좋았던 건 아니다. HBM 사업에서 고전 중인 삼성전자 의존도가 높거나 파운드리 매출 비중이 큰 기업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 증착 장비를 공급하는 원익IPS는 지난해 106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흑자 전환했지만 호황기이던 2022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는 못했다. 이 회사는 2022년 매출 1조115억원에 영업이익 976억원을 냈다. 삼성 파운드리의 핵심 협력사로 후공정을 담당하는 두산테스나와 네패스의 작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38%, 67% 감소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AI 수요가 늘어 상위 협력사부터 낙수 효과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공급망별로 수혜 폭이 다르다”며 “HBM과 첨단 패키징 영역에서 고객사 주문을 충족할 수 있을지가 향후 소부장업체의 실적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