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반기 든 하버드 "대학 독립성 포기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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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부, 보조금 삭감 압박에도…대학서 반발 확산
정부 '反유대주의 근절' 등
지원금 인질로 학칙 개정 요구
하버드 총장 "대학 독립성 침해
입학·연구 등 직접 지시 안돼"
트럼프, 23억달러 지원 동결

◇하버드대 “독립성 포기 못해”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14일(현지시간) 학교 구성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학칙 개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가버 총장은 “어느 정권이 집권하든 정부가 사립대에 무엇을 가르치고, 누구를 입학시키고 채용하며, 어떤 연구를 할지 지시해선 안 된다”며 “연방 정부가 하버드대 커뮤니티를 통제하기 위해 전례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언급한 요구 사항은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있고, 대부분은 하버드대 ‘지적 환경’에 대한 직접적 정부 규제에 해당한다”며 “하버드대는 독립성과 헌법상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이 같은 소식에 트럼프 정부는 이날 22억달러(약 3조1300억원) 규모 보조금과 6000만달러(약 856억원) 규모 계약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 내 ‘반유대주의 근절을 위한 합동 태스크포스(TF)’는 성명에서 “하버드대의 성명은 미국 최고 명문대에 만연한 문제적인 권리 의식, 즉 연방 정부 투자에는 시민권법을 준수할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는 인식을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달 말 하버드대에 지급하는 87억달러(약 12조8000억원) 규모 보조금과 2억5560만달러(약 3800억원) 규모 계약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학교에 통보했다. 하버드대는 최근 몇 달간 트럼프 대통령 측과 밀접한 로비 회사와 계약을 맺고 중동연구센터 교수 책임자를 교체하는 등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정부가 하버드대에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공문으로 전한 뒤 ‘정면 대응’으로 선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공문을 보내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 전부 폐지, 교수진 채용 관련 데이터 감사 수용, 모든 학생 입학 데이터를 연방 정부에 제공 등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국제학생 입학 절차를 바꿔 테러 및 반이스라엘주의를 지지하는 학생을 걸러낼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뉴욕타임스(NYT)는 “하버드대는 행정부 요구를 직접 거부한 최초의 대학이 됐다”며 “미국 내 부유한 대학과 연방 정부 간 대결을 촉발했다”고 전했다. CNBC에 따르면 하버드대는 지난해 기준 530억달러(약 75조6000억원) 기금을 보유해 미국에서 가장 재정이 좋은 대학으로 꼽힌다.

◇트럼프, 진보 성향 대학과 ‘문화 전쟁’
트럼프 정부가 자금 지원을 동결한 대학은 하버드대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트럼프 정부는 동부 명문인 컬럼비아대에 4억달러 규모 연방기금을 삭감했다. 이후 컬럼비아대는 중동학과를 별도 감독하에 두고 캠퍼스에 특수요원 36명으로 구성된 보안팀을 창설하기로 합의했지만 아직 기금은 복원되지 않았다. 브라운대, 프린스턴대, 코넬대 등도 보조금을 동결하거나 검토 중이다.이 같은 연방 정부 조치는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근절을 명분으로 내걸고 진보 색채가 강한 미국 대학과 벌이는 ‘문화 전쟁’ 성격이 짙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정부 전부터 미국 캠퍼스 내에선 반유대주의 확산을 둘러싼 갈등이 크게 불거진 상태였다. 지난해 하버드대의 첫 흑인 수장인 클로딘 게이 총장이 반유대주의 옹호 논란에 휘말려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대학가에선 하버드대 뒤를 이어 주요 대학이 트럼프 정부에 잇달아 반기를 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날 코넬대, 브라운대, 캘리포니아공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9개 주요 연구대학은 에너지부가 삭감한 연구 자금 4억달러와 관련해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테드 미첼 미국교육협의회 회장은 “하버드대 사례는 다른 캠퍼스 지도자에게도 (트럼프 정부에 대항할) 용기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