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커버그, 재판 앞두고 '6400억원' 합의 제안했다가 '퇴짜'

메타가 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게시물에 대한 사실 확인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메타가 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게시물에 대한 사실 확인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이하 메타)에 대한 반독점 재판이 시작됐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재판을 앞두고 소송을 제기한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와 합의를 시도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저커버그는 재판을 2주일여 앞둔 지난달 말 FTC 앤드루 퍼거슨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반독점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4억5000만달러(6428억원)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는 FTC가 요구한 300억달러(42조8550억원)에 크게 모자른 수준이다. FTC가 문제 삼고 있는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의 가치를 생각하면 극히 일부다. 이에 퍼거슨 위원장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최소 180억달러(25조7000억원)와 정부의 이행 명령을 따르는 동의명령(consent decree)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급해진 저커버그는 재판이 다가오자 제안 금액을 약 10억달러로 올렸지만 FTC는 이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결국 재판은 시작됐다.

리나 칸 전 FTC 위원장은 저커버그의 제안에 대해 "망상적"이라며 "그는 경쟁을 피하려 돈을 썼고, 이제는 법 집행에서도 그렇게 하려 한다"고 일갈했다.

저커버그는 전날에 이어 이날 미국 워싱턴DC 연방법원에서 열린 메타 반독점 소송 둘째 날에도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그는 FTC 측 질문을 받고 2012년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이유는 카메라 앱 기능이 당시 페이스북보다 더 나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자체 카메라 앱을 개발하면서 '직접 만들 것인가, 인수할 것인가'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었다"며 "인스타그램이 그 부분에서 더 낫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인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체 앱을 만드는 많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며 "새로운 앱을 만드는 일은 어렵고, 우리가 시도했을 때 대부분 잘 작동하지 않았다"라고 인정했다.

FTC 측은 이날 인스타그램 인수 전 당시 저커버그가 인스타그램의 성장을 위협으로 느끼며 내부적으로 보낸 여러 건의 이메일을 공개했다.

저커버그는 그러나 이런 이메일이 "문맥을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하며 인스타그램의 성장이 우려됐다는 내용의 문건이 일부 있지만, 인스타그램을 인수해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자 했던 열의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과거에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지금의 상황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FTC가 정의한 '소셜미디어(SNS) 시장'의 범위는 너무 좁다고 반박했다.

재판에서는 메타가 2018년 5월 인스타그램 분사를 진지하게 고려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FTC가 제시한 이메일에서 저커버그는 "인스타그램 분사가 여러 중요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구조가 아닐까 고민되기 시작했다"며 "빅테크 해체 요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5∼10년 내에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분사하라는 강제 조치를 받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역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요인 중 하나"라고 적었다. 다만 그는 당시 "인스타그램이 독립적인 상태로 남았다면 지금의 약 10억 명에 가까운 월간 활성 사용자가 아니라 트위터나 스냅챗과 비슷한 3∼4억 명 정도의 규모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메타의 인스타그램(2012년) 및 왓츠앱(2014년) 인수가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불법적인 독점 행위라며 2020년 처음 제기한 소송의 이번 재판은 약 두 달간 진행되며, 메타가 SNS 시장을 불법적으로 독점했다는 판결이 나오면 메타는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