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기관사 일하며 난청 생겨"…법원, 보험금 소송 기각한 이유는

25년 선박 근무 후 난청 진단
보험금 7000만원 청구했지만
法 "책임 선박 특정 안 돼" 기각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수십년간 선박의 기관사로 일했던 전직 선원이 선박의 소음 탓에 난청을 얻었다며 보험금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법원은 해당 선원이 어떤 선박에서 질환을 얻었는지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박이 가입한 재해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봤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12단독 박지숙 판사는 전직 기관장인 A씨가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P&I)을 상대로 낸 보험금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1982년부터 2018년까지 약 25년간 화물선 등에서 기관장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기관장이란 선박 유지보수와 내부 기기 관리를 맡는 선박 기관부의 장(長)을 말한다. 선박 일을 그만둔 A씨는 2023년 3월 한 대학병원에서 '감각신경성 청력손실(난청)'을 진단받았다. 병원은 "직업적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는 소견을 냈다.

이후 A씨는 KP&I를 상대로 보험금 약 7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A씨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선박을 소유한 B 선사가 KP&I와 재해보험을 맺었기 때문이다. A씨 측은 '여러 사업장을 옮겨 다닌 근로자의 업무상 질병은 전체 근무 경력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A씨의 난청은 산재보상보험법상 장해등급 9급에 해당했다.

KP&I는 보험금 청구 대상이 잘못됐다고 맞섰다. A씨 근무 경력 중 KP&I와 재해보상보험 계약을 맺은 곳은 B사뿐인데, 보상 책임은 선사가 가입한 각 보험사에 있다는 취지다. KP&I 측은 "A씨가 승선한 모든 선박 근무가 난청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데, A씨의 B사 선박 근무 기간은 6개월"이라며 "마지막 근무지라는 이유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KP&I 주장을 받아들였다. A씨의 근무 경력과 난청 발병 간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박 판사는 "B사 선박 근무 기간은 A씨가 과거 승선했던 선박에 비해 짧고, A씨 역시 대학병원에서 '귀마개를 착용하는 근무환경이 정착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며 "A씨가 실제로 B사 선박에서 노출된 소음은 실제로 더 낮았을 수 있다"고 했다.

A씨가 B사 근무 이전에 난청을 얻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판단이다. 박 판사는 "A씨가 과거 근무했던 선박 중에는 최대 1만7000t급도 있었고 대체로 B사 선박(992t)보다 큰 대형 화물선이었다"며 "이미 강도 높은 소음에 장기간 지속해서 노출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씨 측이 주장한 대법원 판례에 대한 해석도 달랐다. 당시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지만, 이번 사건은 선원법상 재해보상이 문제가 됐다는 설명이다. 박 판사는 "B사 선박 승선 이전에 난청이 발병했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KP&I에 보상 의무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