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AI에 100조 쓴다는데 전력 수요 연구는 됐나

AI 공약 쏟아내는 대선 주자들
장기 전력수요 해법도 제시해야

김리안 경제부 기자
“인공지능(AI)발(發) 전력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지 공부는 돼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 대선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AI 공약을 쏟아내자 한 전력 시장 전문가는 이렇게 우려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국민 모두 무료로 AI를 활용하는 ‘AI 기본사회’를 만들기 위해 1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200조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밋빛 공약도 좋지만 AI산업 발전에 필수인 전력 수요를 제대로 분석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전문가가 많다. AI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AI 특화 데이터센터는 기존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더 많은 전기 에너지를 소모한다.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고성능 컴퓨팅이 필요해서다. 똑같은 단어를 검색할 때 구글 검색엔진에서는 평균 0.3와트시(Wh) 전력이 쓰이는데, 챗GPT는 2.9Wh가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AI산업 성장에 따른 전력 수요 전망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다. 전력거래소가 최근에서야 AI와 데이터센터 증가로 2050년까지 전력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 예측하는 연구 용역을 발주한 게 전부다.

정부가 최근 확정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AI 특화 데이터센터는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 그런데도 2038년 전력 수요가 145.6기가와트(GW)로 올해 106.0GW에 비해 37.3%나 늘어나는 것으로 전망했다.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센터만도 증가세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2023년 150개를 넘어섰고, 2029년이면 723개에 이를 예정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발표한 AI 보고서에서 “2030년이면 전 세계 AI·데이터센터발 전기 수요가 작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나 현재 일본의 전체 연간 전력 소비량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AI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고, 이를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100조원, 200조원 등 숫자만 제시했지 이에 따른 전력 수요를 전망하고 어떻게 전기를 댈지 계획을 내놓은 것은 보지 못했다.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려면 원전을 풀가동해도 모자라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속시원하게 탈원전 포기를 선언하지도 않았다. 발전 용량이 남아돌아도 송배전망이 확충되지 않아 발전소들이 놀고 있는 문제도 이렇다 할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없다.

AI 시대 국가 지도자를 꿈꾼다면 전력 믹스와 송배전망 확충에 대한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