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분열 키우는 갈등사회, 포용의 길 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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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0
세대·젠더·계층 갈등 확산
의견 차이엔 대화보다 침묵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사회
어느새 배척에 익숙해진 우리
갈등은 사회적 비용 증가시켜
경청과 존중의 가치 일깨워야
김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오픈AI가 자사 소스를 공개했을 때, 우리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경쟁자들이 쉽게 따라올 텐데 왜 핵심 노하우를 공개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시아 학생들보다 서구 학생들이 그룹 프로젝트를 더 잘 이끌어 간다는 점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하나에 하나를 더해 둘보다 나은 결과를 내는 그들의 방식이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사회적 다양성으로 인한 시너지를 얻기보다, 극심한 갈등으로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기까지 이어진 급속한 경제 발전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괴리감을 안겨 지역 간 발전 격차를 초래했고, 이는 한때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김대중 정부를 시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약 20년간 추진된 균형 발전 정책과 사회 고위직에 출신 지역을 고려한 탕평 인사 정책 덕분에 이런 갈등이 어느 정도 완화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치적 견해 차이가 보수와 진보 간 대립을 넘어 중장년과 청년의 세대 갈등, 남성과 여성 간 젠더 갈등, 소득 계층 간 갈등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명절날 친척이 모인 자리에서도 조카의 취업 문제나 정부 정책에 대한 견해를 쉽게 꺼내지 않는다. 아니, 아예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일조차 관대함이 아니라 감정 노동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편을 배려와 관용으로 포용하기보다 철저히 배척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다양성’보다는 ‘갈등’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누구도 먼저 말문을 열려 하지 않고, 설령 열더라도 쉽게 상처를 입거나 상처를 준다. 의견이 다른 순간, 사람보다는 입장과 진영이 먼저 보이는 사회가 돼버렸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사회, 그 안에 우리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사회적 현안도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모아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조정하고 수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갈등이 막대한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의사결정의 비효율로 인한 비용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각자 하나씩 나눠 구축해도 될 일을, 서로 양보 없이 두 개를 각각 따로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다. 상대방 또는 전임자나 이전 정부가 추진하던 일을 무조건 부정하고 뒤집는 결정은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소통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과제가 돼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해내야 할 과제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양보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면은 훌륭하지만, 저런 부분은 보완되면 더 좋겠다”는 식으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존 정책이 적절하게 추진됐다는 점을 인정하고, 변화한 상황에 맞춰 필요한 부분만을 신중하게 수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사회의 성숙도가 결정된다. 정치와 행정, 언론과 시민 모두가 이 과제를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포용할 수 있는 관대함,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비록 숨 막히는 현실일지라도, 잠시 숨을 고르고 나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