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단맛'에 빠졌다. 3배 가까운 웃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한다는 '허니버터칩 광풍'은 서막에 불과했다. 미투제품이 줄줄이 출신되며 감자칩 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더니 이제는 아이스크림·치킨·홍삼 등등 식품 업계 전방위로 허니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화장품도 가세했다. 그야말로 어떤 제품이든 '허니'라는 이름이 붙기만 하면 소비자들의 눈길을 잡아 끌고 있다. 2015년 가장 주목해야 할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 '허니 열풍'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불황이 부른 '허니 열풍'의 이면
식품 넘어 화장품까지, '허니'면 다 된다

사실 '허니 열풍'의 조짐은 '허니버터칩'이 인기를 얻기 전인 2014년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굳이 원조를 꼽자면 '벌집 아이스크림'으로 유명세를 탄 소프트리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소프트라는 유기농 우유로 만든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벌집을 올려 단맛을 강조했다.

그 결과 매장 한곳에서 월평균 1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릴 만큼 대박을 내며 승승장구한 끝에 지난해 11월 홍콩 진출에 성공했다. 소프트리의 '허니칩 아이스크림'이 꿀이라는 식품의 '낡고 오래된' 이미지를 '트렌디' 하게 바꿔 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2014년 9월 등장한 해태제과 '허니버터칩'은 그야말로 허니 열풍의 기폭제나 다름 없었다. 출시 이후 3개월 만에 매출 50억 원을 달성한 허니버터칩의 인기에 현재 제과 업체에서는 미투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며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농심이 지난해 12월 '수미감자칩 허니머스타드'로 반격에 나섰고 출신 한 달 만에 월매출 86억 원을 달성하며 '원조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자 해태제과는 지난 1월 '허니 버터칩 동생' 격인 '허니통통'과 '자가비 허니마일드'를 출시하며 다시 한 번 반전을 노리는 상황이다. 오리온도 작년 7월 출시한 '포카칩 스윗치즈'도 지난해 12월에만 월매출 40억 원을 기록하는 등 조용히 허니 열풍을 이어 가고 있다. 해태제과의 모기업인 크라운제과는 조만간 '돌풍 감자 허니치즈맛'을 출시할 계획이며 지난 1월에도 허니버터칩에 쓰인 아카시아 벌꿀을 사용한 '츄럿'을 출시, 감자칩을 넘어 '달콤한 스낵' 열풍을 확산시키고 있다.

비단 제과 업계뿐만이 아니다. 최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는 '허니버터마카다미아'가 화제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으로 유명세를 탄 마카다미아에 허니버터 맛을 더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마트·롯데마트·G마켓 등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판매 중이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8일부터 14일까지 허니버터마카다미아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21.8%의 신장률을 보일 만큼 급증했다. 이 밖에 SNS에는 '허니버터 아몬드', '허니버터 오징어' 등이 연일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허니 열품이 좀처럼 식을 줄 모르자 최근에는 식품 업체들도 관련 신제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빙그레의 얼린 요구르트 브랜드 '요맘때'는 최근 국산 벌꿀을 담은 '허니 플레인' 제품을 새로 내놓았다. CJ제일제당의 '쁘띠첼 스윗푸딩'은 제주 감귤 꽃 꿀 시럽을 첨가한 '허니블러썸'을 선보였다. 치킨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굽네치킨에서 출시한 '허니커리 바사삭 치킨'은 카레 양념 치킨을 오븐에 구워 내 100% 국내산 꿀을 발랐다. 치킨매니아에서 새롭게 선보인 '치즈블링치킨'도 프라이드 치킨에 아카시아 벌꿀과 체다치즈·카망베르치즈를 버무린 메뉴다. 신제품은 아니지만 허니 열풍에 새롭게 각광받으며 매출이 증가한 제품도 있다. KGG인삼공사에 따르면 홍삼을 벌꿀에 절여 만든 '봉밀절편 홍삼'은 지난해 11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니'라는 키워드의 후광 효과는 화장품 업계에서도 제대로 빚을 발하고 있다. 에이블씨엔씨가 운영하는 화장품 브랜드 미샤는 지난 1월 1일 허니버터팩을 출시해 15일 만에 누적 판매량 1만 개를 돌파했다. 이 제품은 국내산 아카시아 벌꿀과 프랑스산 고메버터 추출물, 감자 등의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스킨푸드는 올해 대표 상품군으로 '로열 허니'를 적극 앞세우고 있다. 명동 등 대표 매장들의 외관을 '로열 허니'로 가득 채운 것은 기본이다. '스윗 허니 하우스'라는 팝업 스토어(반짝 매장)을 순차적으로 오픈하는 등 마케팅에도 적극 활영하고 있다.

불황이 '입맛'까지 바꿨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이토록 '허니'에 열광하는 것일까. 빅 데이터 분석 기관인 다음소프트에 의뢰해 2010년 1월 1일부터 2015년 1월 28일까지 '허니'와 관련한 키워드를 조사했다. 그 결과 2010년에는 맛있는 맛으로 '고소하다'를 2만5409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됐지만 2014년에는 '달다'를 5만7350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맛있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달다'가 '맛있다'와 함께 자주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무렵부터다. 2010년과 2011년만 하더라도 '부드럽다'가 '달다'보다 순위가 높은 데 비해 2013년부터 '달다(2만8036건)'가 '부드럽다(2만6718건)'를 소폭 앞서기 시작했다. 이후 2014년에는 '달다'가 4만5012건, '부드럽다'가 3만6328건으로 차이가 벌어졌다.

'달다'와 함께 쓰이는 인물 연관어도 변화가 보인다, '단맛'과 함께 언급되는 인물로 2013년까지 '아이'가 1위였다. 모두 2만5999건이 언급됐고 2위 역시 '엄마'가 1만8119건을 기록했다. '친구'는 1만6887건으로 3위에 그쳤다. 달달한 맛은 '어린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에는 '친구'가 3만5085건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최재원 다음소프트 이사는 "단맛을 소비하는 주체가 '아이'에서 '성인'으로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처럼 '맛있다'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시기를 살펴본다면 '허니 열풍'이 불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사람들의 입맛이 '고소하다'에서 '단맛'으로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허경욱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허니에 대한 높은 관심은 불황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높아질수록 '달다'와 '짜다' 같은 극단적인 맛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빅 데이터 분석 결과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2012년까지만 하더라도 '달다'는 단어는 '음식', '요리'와 관련된 내용에서만 언급됐다. 일상생활에서 '단맛'을 찾을 때는 '시험'을 준비하는 등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일상'이 언급된 횟수는 2450건이었지만 2014년엔 8748건이 언급됐다. 특히 '여행'과 '다이어트'를 할 때 단맛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최 이사는 "오랜 시간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경쟁이 심화될수록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일상화되고 있다"며 "자연스업게 일상적으로 단맛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입맛이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하고많은 '단맛' 중 왜 하필 '꿀' 인 것일까. 이는 '건강한 닷맛'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결과로 보인다. 최 이사는 "201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구마'와 '초콜릿'을 달다고 언급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그러나 2014년 이후로 꿀을 맛있다고 언급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SNS를 통한 '과시형 소비'도 단기간에 허니 열풍을 증폭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허 교수는 "허니라는 단어 자체가 소비 트렌드로서 힘을 갖게 된 데는 허니버터칩의 풍귀 현상이 큰 역할을 해냈다"며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이미지가 더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SNS를 통해 유명 연예인들이 '허니버터칩'이나 '허니버터마카미디아', 최근에는 '허니버터팩'까지 인증 사진을 올리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최 이사는 "허니 열풍은 이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커다란 흐름으로 봐야 한다"며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한동안은 식품 업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허니'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01호 제공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