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4조원 피해…공정위, 中 컨테이너 가격 담합 조사 착수
코로나때 생산 제한·가격 짬짜미
中업체 가격 담합해 순이익 88배 폭등
공정위, 해운사 피해 파악나서
中업체 가격 담합해 순이익 88배 폭등
공정위, 해운사 피해 파악나서
7일 정부 안팎에 따르면 공정위는 한국해운협회를 통해 중국 컨테이너 제조사들의 담합으로 HMM과 고려해운, 장금상선 등 국내 해운업체가 본 피해를 파악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물류대란이 벌어진 시기 중국 업체에서 사들인 컨테이너 수량과 가격 등을 확인 중이다. 대상 중국 업체는 세계 1위 중국국제해양컨테이너그룹(CIMC)과 싱가마스컨테이너홀딩스 등 네 곳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 경쟁당국(DOJ)이 지난 5월 중국 컨테이너 제조사들을 담합 혐의로 기소하면서 본격화했다. DOJ는 이들 업체가 2019~2024년 컨테이너 생산량을 제한하고 가격을 담합했다고 봤다. 이 시기 컨테이너 가격은 급등했다. 영국 해운조사업체 드루리에 따르면 20피트 컨테이너 연평균 가격은 2019년 1750달러에서 2021년 3690달러로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공정위는 담합이 해외에서 이뤄졌어도 국내 업체가 피해를 봤다면 조사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공정위 조사 결과를 증거로 국제 소송을 제기하면 중국 업체에서 직접 피해 보상을 받을 길도 열린다. 공정위는 DOJ 등 해외 경쟁당국과 협조해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혼란 틈 타 폭리 취한 中 업체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한 2020년 이후 국제 해운물류 시장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항만이 마비되고, 해상 운임은 폭등했다. 어렵게 배를 구해도 컨테이너 박스가 없어서 화물을 실어나르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다. 미국과 한국 경쟁당국은 중국 제조업체들이 이런 상황을 악용해 컨테이너 박스 공급을 틀어막고 폭리를 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운업 기반을 갖춘 다른 나라 경쟁당국도 이번 사태를 눈여겨 보고 있어 혐의가 확정되면 천문학적인 과징금이 연쇄적으로 부과될 전망이다.CCTV 설치해 생산량 감시
7일 미국 경쟁당국(DOJ)이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중국국제해양컨테이너그룹(CIMC) 등 중국 컨테이너 박스 제조업체 4곳은 2019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최소 4년 이상 담합을 진행했다. 이들은 생산라인 가동 시간과 생산량을 제한해 컨테이너 박스 공급을 인위적으로 줄였다. 미국 등 전 세계 주요 업체에 판매할 컨테이너 박스 가격을 합의로 결정하기도 했다.담합에 참여한 업체 간 상호감시 장치도 치밀했다. 각 업체의 생산라인마다 CCTV를 설치해 생산량을 서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신규 생산 라인 건설을 금지하고, 약속을 어기는 업체에 벌금을 매기기로 합의했다. 자신들의 행위가 담합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증거를 숨기기 위해 노력한 사실도 이들이 주고받은 이메일 등을 통해 확인됐다.
4개 중국 업체는 세계 컨테이너 박스 시장을 95% 과점하고 있다. 이들이 담합에 나서면서 컨테이너 박스 가격은 급등했다. 담합이 본격화하기 전인 2019년 1750달러 수준이던 20피트 컨테이너 박스 가격은 2021년 3690달러로 두 배 이상 뛰었다. 같은 기간 40피트 컨테이너 박스 가격도 2800달러에서 5940달러로 올랐다. 코로나19가 수습되면서 해운시장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20피트 컨테이너 박스 가격은 2024년까지 2000달러를 웃돌았다.
가격 급등은 중국 제조업체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2019년 1980만달러였던 CIMC의 컨테이너 제조 사업 부문 순이익은 2021년 17억5000만달러로 2년 만에 88배 급증했다. 2019년 1억1000만달러의 순손실을 냈던 싱가마스컨테이너홀딩스는 2021년엔 1억1860만달러 순이익을 냈다.
국내 해운사, 손해배상 소송의 증거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선 건 중국 제조업체들의 담합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구매하는 한국 해운사들도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되서다. 국내 해운사 중 컨테이너선을 운영하는 곳은 선복량 기준 세계 8위 컨테이너 선사인 HMM을 비롯해 고려해운 장금상선 SM상선 등 13곳이다.공정위가 중국 업체들에 과징금을 부과하려면 먼저 한국 해운사들의 관련 매출액을 산정할 필요가 있다. 담합에 대해선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미국 DOJ는 중국 업체들의 담합으로 인한 전 세계 교역시장의 피해 규모가 52조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컨테이너 박스 담합이 해운사의 비용 증가로 이어져 해상운임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수입업체들의 물류비 부담을 키워 각국의 상거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DOJ를 비롯해 세계 주요 경쟁당국과 공조해 이번 사건을 조사할 방침이다. 아직까지는 미국과 한국 외에 사건을 정식으로 조사하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조사와 재판 진행 상황에 따라 제재에 착수하는 나라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가 한국 해운사들의 피해 규모를 산정해 중국 업체에 과징금을 부과하면 한국 해운사들은 중국 제조업체를 상대로 벌이는 국제 손해배상 소송에서 주요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대형 로펌의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경쟁당국의 판단은 소송에서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다”며 “과징금은 국가로 귀속되지만 국제 소송을 통해 직접적인 피해 회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해운사들이 보복을 우려해 조사에 협조하지 않거나 소송을 주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업체들이 여전히 세계 컨테이너 박스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조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확인해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종관/노유정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