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원자재시장…수익보다 '위험 극소화'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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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츠마스터 '원자재 시장' (2)경제학의 아버지라고 하면 애덤 스미스를 떠올리듯이 원자재 분야에서는 짐 로저스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의 베스트셀러인 ‘원자재시장에 투자하라(Hot Commodities)’의 첫장은 “다가올 새로운 그것은...원자재다(The Next new things is...Things)”란 제목으로 시작한다. 이는 주식이나 채권 등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는 금융상품과 같이 향후 원자재시장 역시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반대로 원자재분야는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라는 의미 역시 내포하고 있다.
최근 10년 다우지수 16% 뛸때 원유 236%·금 486% 폭등
국제유가의 20% 가량은 투기적 거래로 출렁
원자재 비용 극소화보다 위험 줄이는데 초점 맞춰야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서 원자재 위험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높아졌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다. 간단한 산수로도 뚜렷이 나타난다. 2001년 이후 현재 5월까지 약 10여 년 동안 원유 가격은 236% 급등했다. 구리나 금 등 기타 주요 원자재 가격은 이보다 더하다. 같은 기간 세계 구리가격은 328%가 상승했다. 금값은 486%나 폭등했다. 반면에 미국의 다우지수는 16% 상승에 그친 걸 보면 지난 10여년간 원자재 가격의 폭등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기업 실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쉽게 알 수 있다.
# 지난 10년간 원자재 값 폭등세
지난 4월 한국은행이 1663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2011년 기업경영실적 보고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10곳 중 3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는 세계경기 둔화와 함께 원자재 가격 상승에 그 원인이 있다는 조사 결과다. 따라서 원자재 위험 관리는 이제 한국 기업들에 있어서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업무 영역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또 지난해 영국계 HSBC은행이 발표한 대외충격지수를 살펴보면 한국은 27개 조사대상국 중 9번째로 낮은 충격흡수 능력을 보였다. 이는 주로 원자재 가격 변동의 충격에 약한 측면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되고있다. 원자재 위험관리의 중요성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년 7월 한 대그룹 회장이 원자재 공급부터 완제품 생산,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지속가능한 밸류체인(가치사슬)’ 만들기를 주창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기업들은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 상품체인(Global Commodity Chain)’ 개념을 꾸준히 발전시켜오고 있다. 단순히 적시에 적정량의 자재소요량을 조달하는 MRP(Material Requirement Planning) 개념에서, 원자재부터 설비, 인적자원까지 기업의 모든 자원을 통합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전사적 자원계획(ERP), 그리고 기업이 다국화되면서 전 세계 모든 계열사 및 아웃소싱 업체까지 아우르는 확장형 ERP로까지 발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코리아PDS에서 행한 지난 수년 동안의 원자재시장 컨설팅 경험을 통해 살 펴 보면 이러한 기업들의 노력에도 원자재시장의 위험 관리는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글로벌 상품관리체제의 목표가 원자재시장에 대한 위험관리보다는 지나치게 수익극대화에 치중돼 있다.
# 헤징으로 원자재값 변동성 더 커져
한국거래소(KRX)에 있는 황소(bull)와 곰(bear) 조각상을 바라보면 한국인들의 독특한 특징을 읽을 수 있다. 한국거래소 현관에 있는 청동조각은 황소가 곰을 들이 받아 곰이 내동댕이 처진 모습이다. 세계 각국 거래소에도 예외 없이 황소와 곰의 동상이 있지만 황소가 곰을 일방적으로 제압하는 동상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뉴욕시장의 황소와 곰상은 미국 투자자들의 특성을 나타내는 듯한 거친 황소가 곰을 들이받고 있는 상황에서 곰이 치열하게 소의 목을 물어뜯는 전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황소와 곰 상은 다소 거리를 두고 서로를 재는 모습이다. 한국거래소의 황소와 곰 상을 보면 최근 한국 기업들의 원자재 관리는 위험관리라는 본질적인 측면보다는 비용절감이라는 측면에 몰입돼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원자재시장에서의 헤징 개념이 일반적인 금융상품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는 것은 원자재시장의 위험관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헤지‘(hedge)란 본래 정원을 보호하는 울타리란 뜻이다. 따라서 헤지펀드란 본래 위험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위험관리보다는 ‘레버리지 기법’을 통해 단기적 고수익을 추구, 원자재시장 불안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근 보고서에서 “국제유가의 20%가량은 금융자본의 투기거래에 의해 상승한 것이며, 2009년 이후 원자재 가격과 투기세력의 매수매도 포지션의 상관관계는 0.8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원자재시장에서는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이전에 볼 수 없던 독특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단기적으로 가격 급등락이 반복되면서 시장의 위험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 금융과 달리 본질적 가치 지니고 있어
우리는 흔히 원자재시장 역시 ‘인간’이 거래를 한다고 믿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원자재시장의 거래는 금융시장과 마찬가지로 시스템거래와 임의거래로 나뉜다. 시스템거래란 역사적 데이터를 분석하는 수학적 모형에 입각해 이루어지는 거래다. 인간의 판단과 간섭을 배제하고 시장의 추세나 역전 같은 특정한 가격 패턴을 찾아내기 위해 가격이나 거래량 정보를 분석, 거래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임의거래방식은 시장의 펀더멘털(기초여건) 조건에 의존하는 거래방식이다. 최근 원자재시장에서 전자거래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은 시스템거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원자재가격이 원자재의 본질적 가치뿐만 아니라 시장 참여자의 기대, 혹은 두려움에 의해서 좌우될 위험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이러한 환경에서 원자재 관리의 목적을 이익극대화에 둔다는 것은 위험극대화와 같은 동전의 양면이 될 수 있다.그렇다면 외환시장이나 채권시장과 달리 위험관리에서 고려해야 하는 원자재만의 독특한 특징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일반 금융상품과 달리 원자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원자재는 주식과 달리 파산이라는 것이 없으며, 생산요소로 사용되기 때문에 기본적인 가치는 유지할 수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원자재는 보유편익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다른 금융상품과 달리 생산의 요소로 사용된다는 측면에서 향후 공급 부족을 예상할 경우 현재 물량을 미리 확보하는 데 따른 이점이 물량 확보에 따른 제비용(금융비용 및 창고보관비, 보험료 등)보다 높을 경우 현재 시점에서 실수요가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물량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유리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재생성이다. 재생성은 장기적으로 원자재 가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원자재 재생비용보다 크게 높아지는 경우, 고철 등 원자재 스크랩의 공급이 크게 높아지는 한편 대체원자재의 개발이 확산되며 원자재 가격의 지나친 급등을 저지한다.
이 때문에 원자재 가격은 일반 금융상품에 비해 과도한 상승이나 급락이 적고, 원자재 품목들 간의 일정한 가치 흐름을 유지하게 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러한 원자재의 특질을 잘 파악하면 위험관리가 가능하다.
# 비용 극소화보다 위험극소화 해야
최근 그리스를 중심으로 유로존 재정위기가 심각해지면서 향후 원자재가격의 불확실한 동향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원자재 위험관리를 통한 생산비용 극소화, 다시 말해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기업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관리의 기본, 특히 작금의 경제 환경에서는 원자재 비용의 극소화가 아닌 원자재 위험의 극소화에 방점이 찍어야 한다. 짐 로저스는 그의 책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원자재시장은 특유의 광기를 보여주며 끝을 맺을 것이다.” 우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마치 세계화라는 광풍의 끝을 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11년 원자재시장의 모습을 보면 이는 끝이 아니라 여전히 한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다가오는 다음 원자재시장에서 필요한 것은 수익이 아니라 관리다.
문용주 <코리아PDS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