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현대화폐이론은 경제이론이 아닌 정치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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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한 유동성 공급하라는 MMT 주장 어떻게 봐야 하나
무제한 재정투입·유동성 공급 등 주류경제학과 정반대 처방
인플레 압력 없는 불황기·제로금리서만 성립하는 특수이론
정부가 못할 일 없다는 위험한 이론…공산권 망한 이유 봐야
차현진 <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무제한 재정투입·유동성 공급 등 주류경제학과 정반대 처방
인플레 압력 없는 불황기·제로금리서만 성립하는 특수이론
정부가 못할 일 없다는 위험한 이론…공산권 망한 이유 봐야
차현진 <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중앙은행이 우파와 좌파 양쪽에서 거세게 공격받고 있다. 시장을 중시하는 우파들은 민간이 만든 가상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중앙은행에 도전한다. 정부를 중시하는 좌파들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꿈도 꾸지 말고, 정부에 협조나 잘하라고 압박한다.
2000년대 들어 등장한 좌파들의 주장을 현대화폐이론(MMT)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론의 공격 대상은 사실 중앙은행이 아니다. 주류경제학이다.
재정건전성과 물가 안정을 강조해온 주류경제학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원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MMT는 그런 사정을 꼬집으며 주류경제학과 정반대 처방을 제시한다. 정부는 완전고용을 위해 무한히 지출하고, 중앙은행은 국채 매입을 통해 무한히 유동성을 공급하라는 것이다. 국민에게 계속 세금을 걷는 이상 정부의 원리금 상환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인플레이션은 사소한 문제(그 이유는 뒤에서 설명한다)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현대화폐이론은 적절한 이름이 아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통화정책은 재정정책의 하위수단이다. 그러므로 화폐이론이라는 이름이 가당치 않다(통화정책이 빠진 화폐이론은 전술이 빠진 군사이론과 같다). 재정정책만 강조되므로 ‘현대재정이론’이라고 불러야 한다.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무한히 돈을 푸는 정치체제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신국가론’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화폐가 징세수단이므로 인플레이션은 사소한 문제다. 재정적자(중앙은행의 국채 매입) 때문에 화폐가 너무 많이 풀렸다면,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두면 그만이다.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이 아니라 정부의 징세를 통해 관리된다는 말이다. 정통 경제학자들이 기절할 만한 결론이다.
주류경제학자들은 MMT를 애써 외면한다. 그레고리 맨큐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학계의 한 귀퉁이에서 튀어나와 과격 정치인들만 주목하는 ‘듣보잡’”이라고 폄하한다. 실제로 미국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 등 좌파 정치인들이 그 이론의 충실한 지지자다.
MMT는 이름과 달리 현대적이지 않으며, 지극히 미국적인 현상이다(주창자 대부분이 미국인이다). “화폐는 국가가 만든 것(화폐국정론)”이라는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 항상 있었던 생각이다(사이드 기사 참조). 히틀러도 그 이론의 지지자였다. 히틀러를 경험한 유럽은 그래서 MMT에 냉담하다.
반면 미국은 남북전쟁 때 그린백(법정화폐)을 도입한 이후 1900년 다시 금본위제로 복귀할 때까지 화폐 문제 때문에 극심한 사회갈등을 겪었다. 오늘날도 화폐 문제는 정치의 좋은 소재다. 2012년 대선에서는 론 폴 공화당 후보(우파)가 MMT와 정반대되는, 금본위제 복귀를 공약하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 정치인과 유권자들은 MMT에 관심이 많다.
경제이론으로 MMT는 완전히 생소하지도 않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와 함께 화폐국정론은 이미 정설이 됐다. 불경기 때 재정정책에 의존하는 것은 모든 케인지언의 공통된 처방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을 하나로 묶어서 살피는 것은 옛 소련 출신의 경제학자 아바 러너(기능적 재정론) 이래 거시경제학의 고전적 방법론이다(역설적으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처음으로 구분한 사람이 러너다).
그러나 MMT는 경제이론보다 정치사상에 가깝다. 서양철학은 인식론, 존재론, 가치론이 삼위일체를 이룬다. MMT는 인식론(화폐는 징세수단)과 존재론(중앙은행 독립성은 허구), 가치론(완전고용이 최고가치)으로 구성된 정치철학이다. 실증분석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류경제학자들은 MMT를 평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재정건전성이나 통화 남발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론적으로 기축통화국은 파산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미국 정부도 위기에 몰린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체면불구하고 유럽 중앙은행들에 돈을 빌렸다(이때 나온 것이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금태환 약속(브레턴우즈 체제)까지 깼다. 재정적자와 통화 남발에 따른 미 달러화 위기의 결과였다.
그래도 MMT의 오류가 당장 드러나진 않는다. 금리가 0%에 가까워서 화폐와 국채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MMT에 따르면 재정적자는 민간의 투자를 위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촉진한다. 재정적자만큼 화폐 발행이 늘어나 시장금리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지독한 불황기에만 가능한 말이다. 바로 지금이다. 그래서 MMT가 지금은 무척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통 경제이론은 현실을 설명하는 데 무기력하다. 선진국들의 국가채무가 전례 없이 늘고, 각국 중앙은행이 겁 없이 돈을 푸는데도 당장 심각한 부작용이 보이지 않는다. 기존 경제이론으로는 설명하기가 난감하다.
종합해보건대 MMT 속에 담긴 인식론 즉, 화폐의 기원을 국가로 보는 견해는 상당히 타당하다(다만 새롭지는 않다). 중앙은행의 존재이유를 물가 안정이 아니라 원활한 재정자금 공급에 두는 존재론은 상당히 의심스럽다(다만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끝으로 완전고용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정부가 못할 일이 없다는 가치론은 지극히 위험하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동물농장》(조지 오웰)의 구호를 연상케 한다. 과거 공산국가들은 예산 제약을 무시한 채 인민의 복지라는 궁극의 목표만 추구하다가 망했다. ■ 화폐국정론 vs 시장기원론
보통 화폐는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거래 당사자들이 고안해낸 발명품이라고 설명한다. 19세기 후반 다윈의 영향으로 사회진화론이 한창 위력을 발휘할 때 등장한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화폐의 기원은 시장과 민간이다. 정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한편 그리스에서는 돈을 노미스마(nomisma)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법(명령)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는 내재가치가 아니라 국가의 명령과 법률 때문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주나라의 강태공은 아홉 개의 정부부처가 내재가치에 상관없이 각기 화폐를 발행해서 국정을 수행토록 했다(구부환법). 이런 사상을 통틀어 화폐국정론(state theory of money)라고 한다.
화폐의 기원이 시장(민간)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국민의 신인도를 중시하고 화폐의 품질 유지 노력에 초점을 맞췄다.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지지했다. 그에 비해 화폐국정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본위제보다 강력한 공권력을 강조했다. 이성계와 아돌프 히틀러가 대표적이다.
위화도 회군(1388년) 이후 권력을 잡은 이성계는 “화폐를 발행하는 권력은 지극히 높은 곳의 한 사람에게 있다(화권재상론)”고 선포하고 닥나무로 만든 지폐 즉, 저화(楮貨)를 발행했다(1391년).
바이마르공화국의 하급 장교였던 히틀러는 화폐국정론에 이끌려 나치당에 입당했다(1919년). 나치당은 당시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공권력 부족 즉, 정부 불신 때문이라고 선전했고 히틀러는 집권한 뒤 체제 선전과 함께 초강력의 공권력을 휘둘렀다.
오늘날에는 화폐국정론이 대세다.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모든 나라가 법률을 통해 불태환 화폐를 발행하고 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주권국가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내재가치가 전혀 없는 가상화폐(SDR)를 발행한다. 비트코인(민간이 만든 가상화폐)의 대척점이다. MMT는 유구한 전통을 지닌 화폐국정론의 좌파 버전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화폐는 물질(금화, 지폐)이 아니라 계산단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국가의 예산과 조세수입은 ‘원’으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m와 ㎏ 같은 도량형이다. 진시황 이래 도량형은 민간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한다. 그런 점에서 MMT는 포스트 케인스주의에 속한다.
2000년대 들어 등장한 좌파들의 주장을 현대화폐이론(MMT)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론의 공격 대상은 사실 중앙은행이 아니다. 주류경제학이다.
재정건전성과 물가 안정을 강조해온 주류경제학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원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MMT는 그런 사정을 꼬집으며 주류경제학과 정반대 처방을 제시한다. 정부는 완전고용을 위해 무한히 지출하고, 중앙은행은 국채 매입을 통해 무한히 유동성을 공급하라는 것이다. 국민에게 계속 세금을 걷는 이상 정부의 원리금 상환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인플레이션은 사소한 문제(그 이유는 뒤에서 설명한다)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현대화폐이론은 적절한 이름이 아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통화정책은 재정정책의 하위수단이다. 그러므로 화폐이론이라는 이름이 가당치 않다(통화정책이 빠진 화폐이론은 전술이 빠진 군사이론과 같다). 재정정책만 강조되므로 ‘현대재정이론’이라고 불러야 한다.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무한히 돈을 푸는 정치체제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신국가론’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화폐는 징세수단, 인플레 걱정은 노(no)?
현대화폐이론이라는 이름은, 화폐의 기원에서 이론이 출발하기 때문에 나왔다. 정통 경제학에서는 화폐가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거래당사자들이 고안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MMT는 화폐를 ‘국가가 징세하기 위해 만든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국가가 법정화폐로 세금을 걷는 이상 납세자들은 그것을 쓰지 않을 수 없다.화폐가 징세수단이므로 인플레이션은 사소한 문제다. 재정적자(중앙은행의 국채 매입) 때문에 화폐가 너무 많이 풀렸다면,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두면 그만이다.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이 아니라 정부의 징세를 통해 관리된다는 말이다. 정통 경제학자들이 기절할 만한 결론이다.
주류경제학자들은 MMT를 애써 외면한다. 그레고리 맨큐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학계의 한 귀퉁이에서 튀어나와 과격 정치인들만 주목하는 ‘듣보잡’”이라고 폄하한다. 실제로 미국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 등 좌파 정치인들이 그 이론의 충실한 지지자다.
화폐국정론의 부활
그러면 MMT를 어떻게 볼 것인가?MMT는 이름과 달리 현대적이지 않으며, 지극히 미국적인 현상이다(주창자 대부분이 미국인이다). “화폐는 국가가 만든 것(화폐국정론)”이라는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 항상 있었던 생각이다(사이드 기사 참조). 히틀러도 그 이론의 지지자였다. 히틀러를 경험한 유럽은 그래서 MMT에 냉담하다.
반면 미국은 남북전쟁 때 그린백(법정화폐)을 도입한 이후 1900년 다시 금본위제로 복귀할 때까지 화폐 문제 때문에 극심한 사회갈등을 겪었다. 오늘날도 화폐 문제는 정치의 좋은 소재다. 2012년 대선에서는 론 폴 공화당 후보(우파)가 MMT와 정반대되는, 금본위제 복귀를 공약하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 정치인과 유권자들은 MMT에 관심이 많다.
경제이론으로 MMT는 완전히 생소하지도 않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와 함께 화폐국정론은 이미 정설이 됐다. 불경기 때 재정정책에 의존하는 것은 모든 케인지언의 공통된 처방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을 하나로 묶어서 살피는 것은 옛 소련 출신의 경제학자 아바 러너(기능적 재정론) 이래 거시경제학의 고전적 방법론이다(역설적으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처음으로 구분한 사람이 러너다).
그러나 MMT는 경제이론보다 정치사상에 가깝다. 서양철학은 인식론, 존재론, 가치론이 삼위일체를 이룬다. MMT는 인식론(화폐는 징세수단)과 존재론(중앙은행 독립성은 허구), 가치론(완전고용이 최고가치)으로 구성된 정치철학이다. 실증분석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류경제학자들은 MMT를 평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화폐와 국채 구분도 못하는 MMT
MMT의 가장 큰 약점이자 특징은, 경제를 과도하게 단순화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화폐와 국채를 구별하지 않는다. 중앙은행과 정부를 하나로 보는 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화폐와 국채는 다르다. 화폐는 민간의 생산과 소비 등 상거래 때문에 쓰임새가 있고, 국채는 민간의 저축욕구 때문에 쓰임새가 있다. 즉 화폐는 지급수단이고, 국채는 투자수단이다. 그 간단한 차이도 구별하지 못하는 MMT는 수준 미달이다.재정건전성이나 통화 남발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론적으로 기축통화국은 파산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미국 정부도 위기에 몰린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체면불구하고 유럽 중앙은행들에 돈을 빌렸다(이때 나온 것이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금태환 약속(브레턴우즈 체제)까지 깼다. 재정적자와 통화 남발에 따른 미 달러화 위기의 결과였다.
그래도 MMT의 오류가 당장 드러나진 않는다. 금리가 0%에 가까워서 화폐와 국채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MMT에 따르면 재정적자는 민간의 투자를 위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촉진한다. 재정적자만큼 화폐 발행이 늘어나 시장금리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지독한 불황기에만 가능한 말이다. 바로 지금이다. 그래서 MMT가 지금은 무척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통 경제이론은 현실을 설명하는 데 무기력하다. 선진국들의 국가채무가 전례 없이 늘고, 각국 중앙은행이 겁 없이 돈을 푸는데도 당장 심각한 부작용이 보이지 않는다. 기존 경제이론으로는 설명하기가 난감하다.
정통 경제이론 무기력 파고들었지만…
결국 MMT는 지금의 특수한 상황을 설명하는 특수한 이론이다. 기존 경제이론에 대한 실망감이 MMT 선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개 구충제가 말기 암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그것을 정상적인 치료제라고 할 순 없다. MMT는 경제학계의 개 구충제다.종합해보건대 MMT 속에 담긴 인식론 즉, 화폐의 기원을 국가로 보는 견해는 상당히 타당하다(다만 새롭지는 않다). 중앙은행의 존재이유를 물가 안정이 아니라 원활한 재정자금 공급에 두는 존재론은 상당히 의심스럽다(다만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끝으로 완전고용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정부가 못할 일이 없다는 가치론은 지극히 위험하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동물농장》(조지 오웰)의 구호를 연상케 한다. 과거 공산국가들은 예산 제약을 무시한 채 인민의 복지라는 궁극의 목표만 추구하다가 망했다.
■ 화폐국정론 vs 시장기원론
"거래 당사자들의 발명품"…"화폐=법" 이란 주장 맞서…MMT, 국정론 좌파 버전
보통 화폐는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거래 당사자들이 고안해낸 발명품이라고 설명한다. 19세기 후반 다윈의 영향으로 사회진화론이 한창 위력을 발휘할 때 등장한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화폐의 기원은 시장과 민간이다. 정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한편 그리스에서는 돈을 노미스마(nomisma)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법(명령)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는 내재가치가 아니라 국가의 명령과 법률 때문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주나라의 강태공은 아홉 개의 정부부처가 내재가치에 상관없이 각기 화폐를 발행해서 국정을 수행토록 했다(구부환법). 이런 사상을 통틀어 화폐국정론(state theory of money)라고 한다.화폐의 기원이 시장(민간)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국민의 신인도를 중시하고 화폐의 품질 유지 노력에 초점을 맞췄다.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지지했다. 그에 비해 화폐국정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본위제보다 강력한 공권력을 강조했다. 이성계와 아돌프 히틀러가 대표적이다.
위화도 회군(1388년) 이후 권력을 잡은 이성계는 “화폐를 발행하는 권력은 지극히 높은 곳의 한 사람에게 있다(화권재상론)”고 선포하고 닥나무로 만든 지폐 즉, 저화(楮貨)를 발행했다(1391년).
바이마르공화국의 하급 장교였던 히틀러는 화폐국정론에 이끌려 나치당에 입당했다(1919년). 나치당은 당시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공권력 부족 즉, 정부 불신 때문이라고 선전했고 히틀러는 집권한 뒤 체제 선전과 함께 초강력의 공권력을 휘둘렀다.
오늘날에는 화폐국정론이 대세다.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모든 나라가 법률을 통해 불태환 화폐를 발행하고 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주권국가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내재가치가 전혀 없는 가상화폐(SDR)를 발행한다. 비트코인(민간이 만든 가상화폐)의 대척점이다. MMT는 유구한 전통을 지닌 화폐국정론의 좌파 버전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화폐는 물질(금화, 지폐)이 아니라 계산단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국가의 예산과 조세수입은 ‘원’으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m와 ㎏ 같은 도량형이다. 진시황 이래 도량형은 민간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한다. 그런 점에서 MMT는 포스트 케인스주의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