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은 넓고 푸른 세계다. 어딜 가든 바다와 숲이 너울대어 그 안에 머문 이들을 고요히 안아준다. 하릴없이 해변을 걷고, 진한 초록의 그늘에 머물면 자연 속 작은 존재로 위안받고, 기댈 수 있어 미소가 맴돈다. 이번 여정은 고흥의 자연과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잘 지내고 계시죠?” “네. 덕분입니다.”라고.
고흥 거금도, 해돌마루펜션 앞의 바닷길 산책로
고흥 거금도, 해돌마루펜션 앞의 바닷길 산책로
고흥은 면적 807.39㎢로 고흥반도와 함께 23개의 유인도와 183개의 무인도로 이뤄졌다. 북쪽으로는 순천, 동쪽으로는 여수가 가까워 함께 여행하기에도 좋다. 순천역에서 고흥까지는 40여 분, 여수와는 팔영대교로 연결되어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팔영산지구로 이동이 편리하다.
녹동바다정원에서 바라본 녹동항
녹동바다정원에서 바라본 녹동항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여행지는 녹동항이다. 남해 중서부의 녹동항은 1971년 국가 어항으로 지정되어 인근 소록도, 거금도, 거문도, 백도, 제주도를 오가는 해상교통의 중심지이자 인근 섬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이 모이는 집산지이기도 했다.
녹동장어거리에 맛본 야들야들한 장어 샤브샤브
녹동장어거리에 맛본 야들야들한 장어 샤브샤브
수많은 물자와 사람이 오간 이곳은 오늘날 고흥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매주 토요일에는 녹동항 드론쇼가 열리고, 특히 소록대교와 거금대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황홀한 일몰은 놓칠 수 없는 비경이다. 오랜 세월 자부심 가득한 맛을 지켜온 녹동 장어도 샤브샤브, 구이 등으로 일대 형성된 녹동장어거리에서 맛볼 수 있다.
소록대교가 보이는 녹동항, 일몰 무렵 풍경
소록대교가 보이는 녹동항, 일몰 무렵 풍경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팔영산 서쪽 자락에는 팔영산편백치유의 숲이 자리한다. 수령 40년에 달하는 편백나무가 416ha(12584평)에 달하는 공간에 뿌리를 내린 곳이다. 피톤치드가 바람에, 나뭇잎에, 보드라운 흙 위로 전해지니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편백나무 숲에 마련된 황톳길
편백나무 숲에 마련된 황톳길
기자는 산림치유사와 함께 2시간 코스의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산림치유에 대한 기본적인 개요와 함께 편백나무 숲의 황톳길을 맨발로 걷고, 올바르게 숨 쉬는 법을 배우며, 해먹 속에 누워 휴식한 시간은 굉장한 여운으로 남았다.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해먹 속에서 느끼는 숲의 기운이 편안하다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해먹 속에서 느끼는 숲의 기운이 편안하다
선생님은 이 프로그램이 이름이 ‘팔영 정기 기운 양생 프로그램’이라고 했는데 이곳에 온 한 사람, 한 사람을 제대로 숲으로 보살펴 주고자 하는 뜻이 잘 전해졌다. 기자처럼 산림치유사와 함께 숲 구석구석을 알차게 돌아보는 시간을 갖거나, 초입에 자리한 테라피센터에서 유자, 편백, 석류 등을 활용한 수치유(사우나)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2시간 코스의 프로그램은 숲 속의 명상을 주요 주제로 한다
2시간 코스의 프로그램은 숲 속의 명상을 주요 주제로 한다
편백치유의 숲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사람들
편백치유의 숲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사람들

여행 2일 차 #거금도

여행 2일 차는 거금도에서 오롯한 시간을 보냈다. 녹동항에서 소록대교, 소록도에서 거금대교로 연결되는 거금도는 고흥의 유인도 중 가장 큰 섬으로 구석구석 여행지의 매력이 차고 넘친다.
거금도 해돌마루펜션, 바로 앞의 바다를 매 시간 감상할 수 있다
거금도 해돌마루펜션, 바로 앞의 바다를 매 시간 감상할 수 있다
까만 밤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을 보고, 이른 아침에는 바다 너머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지켜보았다. 하룻밤을 머문 해돌마루펜션에서는 객실 통창 너머로 이러한 풍경이 매일 펼쳐진다.
객실에서 바라본 일출
객실에서 바라본 일출
펜션과 지근거리에 거금생태숲이 있어 아침 산책을 나섰다. 적대봉 남쪽 자락에 위치한 거금생태숲은 122ha(3690평) 면적에 난대성 지역의 주요 수종인 후박나무, 이팝나무, 소사나무, 참식나무 등 11종의 난대식물 자생군락지로 이뤄졌다. 거금생태숲은 입구에서 전망좋은곳까지 왕복 약 1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거금생태숲, 구름다리만 건너면 제법 느긋하게 풍경을 담을 수 있다
거금생태숲, 구름다리만 건너면 제법 느긋하게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입구에서 구름다리까지는 제법 경사져 숨이 차지만 이윽고 캐노피하이웨이에 다다르면 숲의 깊고 생생한 에너지에 덤벙 빠지는 기분이다. 눈앞에서 만난 서어나무는 유난히 인상적이다. 야생 숲의 천이 과정에서 마지막인 극상림 단계의 수종으로 매끄러운 회색의 수피에 힘줄 모양의 무늬가 발달한 근육처럼도 보인다.
캐노피하이웨이에서 만난 서어나무
캐노피하이웨이에서 만난 서어나무
거금도에서 다시 녹동항으로 넘어가는 길에 신촌브루라는 카페에 들렀다. 박철호 사장님은 서울에서 오랜 은행 생활을 접고, 아내와 함께 고요히 머물 수 있는 곳으로 현재의 자리를 발견했다. 한때 이발소였고, 점방이었던 낡은 건물은 구석구석 정성을 들여 지난 2022년 2월 핸드드립 전문카페로 재탄생했다.
몇 개월 만에 다시 만난 사장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커피를 내리는 박철호 사장님
몇 개월 만에 다시 만난 사장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커피를 내리는 박철호 사장님
손님방처럼 꾸며진 신촌브루의 또 하나의 공간
손님방처럼 꾸며진 신촌브루의 또 하나의 공간
외지인들은 사장님이 서울 신촌에서 와서 신촌브루인가? 짐작하기도 하지만, 금산면 신촌리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선보이기에 신촌브루다. 계절이 두 번 달라진 뒤에 다시 만난 사장님은 여전히 정다운 미소와 안부를 건넨다. 그 사이 사장님은 외지인에서 고흥 로컬로 안정적인 자리매김을 한 것 같다.
갓 내린 커피에 창밖의 논밭 뷰를 맛있게 음미한다
갓 내린 커피에 창밖의 논밭 뷰를 맛있게 음미한다
고흥의 바다와 숲이 넉넉히 사람을 품어주니 하루, 이틀이 지나면 지날수록 여유가 들이찬 덕분일 것이다. 여행하기 좋은 가을, 고흥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여정에 이곳을 꼭 넣자. 오는 9월 13일~10월 6일 고흥분청문화박물관, 분청사적공원 일원에서 ‘2024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고흥 분청사기 요지-화화1250’이 열린다.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가마터 30여 기가 밀집분포된 운대리 가마터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가마터 30여 기가 밀집분포된 운대리 가마터
분청사기는 물론 청자, 백자, 청화백자 등의 제조 과정과 역사를 두루 경험하는 전시관
분청사기는 물론 청자, 백자, 청화백자 등의 제조 과정과 역사를 두루 경험하는 전시관
박물관이 자리한 고흥 운대리는 한국 3대 자기 중 하나인 분청사기의 가마터 27기가 밀집 분포한 곳으로 이번 행사를 통해 운대리의 역사적 의의와 분청사기의 미적 가치를 매일 오후 7시~10까지 진행되는 야간 행사에 고루 담아낸다.
백토 물에 덤벙 담가 꺼낸 듯 하다하여 '덤벙분청사기'로 불리는 덤벙무늬 대접
백토 물에 덤벙 담가 꺼낸 듯 하다하여 '덤벙분청사기'로 불리는 덤벙무늬 대접
학이 날아 오르는 모습을 흑백상감으로 표현한 학무늬 편병
학이 날아 오르는 모습을 흑백상감으로 표현한 학무늬 편병
정상미 한경매거진 기자 vivi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