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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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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립대학이 금고에 쌓아둔 누적 적립금이 사상 처음으로 12조원을 돌파했다. 학교법인 적립금까지 합치면 13조원에 육박한다. 학생 급감과 등록금 인상 속에서 대학의 곳간은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났지만 자금 운용 성적은 낙제점 수준이다. 사립학교법에 따라 등록금 회계에서 전입된 금액을 제외한 적립금의 최대 절반을 금융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데도 대학은 이자가 안정적으로 나오는 은행 예금을 선호한다. 대학이 수조원의 유휴 자금을 적극적으로 불리는 대신 정부를 향해 “재정난이니 혈세를 달라”고 손을 벌리는 사학 자금 운용의 모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허라미 기자
그래픽=허라미 기자

5조원은 10년 내 사용 계획 無

27일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교육부와 한국사학진흥재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립 일반대 143곳과 전문대 117곳의 2025회계연도 교비회계 누적 적립금은 12조2358억원이었다. 한 해 전보다 6714억원(5.8%) 늘었다. 법인회계에 쌓인 6242억원까지 합하면 12조8600억원에 이른다.

적립금의 절반 이상은 건물을 짓는 용도로 묶여 있다. 교비회계 적립금을 목적별로 보면 건축 목적이 6조4047억원으로 전체의 52.3%를 차지했다. 기타 3조369억원(24.8%), 장학 1조7831억원(14.6%), 연구 8519억원(7.0%), 퇴직 1592억원(1.3%) 순이었다. 2011년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등록금 회계의 건물 감가상각비 상당액을 건축적립금으로 전출할 수 있게 되며 학생 등록금이 대규모 유휴 자금으로 묶였다.

장기간 묵히는 돈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구조다. 주로 펀드에 투자하거나 은행에 맡긴다. 지난해 전국 은행에 예치된 적립금은 5조8187억원으로, 유가증권으로 운용된 규모(1조7856억원)의 세 배가 넘었다. 기금을 투자자산으로 굴리는 대학은 전국 260곳 중 48곳에 그쳤다. 금융회사에 예치하지 않은 적립금은 교육부조차 구체적인 운용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보다 안정적인 이자 장사

대학은 시중은행 정기예금 등 ‘안전 제일주의’를 선호한다. 예금 중심으로 운용하더라도 금리를 충분히 비교하고 유리한 조건을 확보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교육부가 제출한 일반대 117곳과 전문대 85곳의 금융회사 예치 현황에 따르면 전체 8조3300억원 중 19.7%인 1조6430억원에 비교 기준 금리보다 낮은 이율이 적용됐다. 기준보다 0.3%포인트 이상 낮은 금리가 적용된 예치금은 2416억원, 0.5%포인트 이상 낮은 예치금은 1250억원이었다. 이율이 연 1%에도 못 미치는 예치금도 596억원에 달했다.

시중금리보다 낮은 이율로 자금을 예치한 이면에는 주거래은행과의 ‘발전기금 약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금금리를 깎는 대신 대학 법인에 생색을 낼 수 있는 기부금을 챙기는 일종의 리베이트성 거래 구조다. 경일대는 전체 자금의 80%를 예치하는 조건으로 iM뱅크에서 기부금 20억원을 받았다. 광주대는 광주은행과 200억원 이상의 잔액을 유지하면 은행이 매년 1억원을 대학에 출연하는 내용의 협약을 맺었다. 법인의 이해관계를 위해 등록금으로 불어난 적립금의 정상적인 이자 수익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한 원내대표에게 보낸 회답서에서 “특정 금융회사에 장기간 저리로 예치하는 것은 다른 금융회사에 더 높은 이율로 예치해 발생하는 수익을 포기한 것”이라며 “특정 대학의 예치 이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면 만기 시 더 높은 이율을 제공하는 금융회사로의 전환을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원내대표가 전국 사립대의 적립금 운용계획서 277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기말추정잔액 11조3694억원 가운데 46.1%인 5조2409억원의 사용 예정 시점이 ‘10년 이상’으로 분류됐다. 3년 이내에 쓰겠다고 계획한 돈은 2조6527억원(23.3%)에 불과했다. 대학 재정 확충을 위해선 당장 집행 계획이 없는 자금을 적극적으로 굴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원내대표는 “사용계획 연한과 예치 이율을 공시하고 실태점검 결과를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립금 운용할 전문성 길러야

대학이 투자를 주저하는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정부는 2007년 규제를 완화해 적립금의 절반까지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다만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대학 법인은 투자 손실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고려대 재단인 고려중앙학원은 2012년 이사회 심의와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490억원의 유동자산을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100억원대 손실을 봤다.

오랜 기간 모은 적립금에 손실이 나면 교육·연구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고, 운용 책임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는 것이 불가피하다. 투자 성적도 부담이다. 대학재정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적립금을 유가증권에 투자한 4년제 사립대는 66곳이었다. 자료에 집계된 유가증권 평가손익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4년 연속 마이너스였다. 연도별 평가손실은 2022년 18억4000만원, 2023년 56억원, 2024년 23억9000만원, 지난해 12억3000만원이었다.

투자 비중을 늘리려면 대학 적립금을 운용할 전문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까운 시일 내 집행할 자금과 10년 이상 보유할 자금을 구분하고, 각각의 목적에 맞는 운용 원칙을 세워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최고투자책임자(CIO) 출신 인사는 “손실을 피하려고 예금만 고집하거나 전문성 없이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일을 막으려면 운용 전문 인력이 대학 기금운용심의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형창/최해련/고재연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