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신일지도 모른다. 길을 잃은 개와 고양이, 수족관의 물고기, 담벼락에 핀 민들레, 손톱만한 개미에게 이토록 크나큰 인간이 어찌 신이 아닐 수 있을까? 삶의 태도로 제 삶을 구원하고 때론 파괴할 수도 있는 인간이 어찌 신이 아니란 말인가.

태곳적 심연을 유람하는 홍도

홍도 유람선을 타고 눈부신 비경을 탐하러 간다./사진=이효태
홍도 유람선을 타고 눈부신 비경을 탐하러 간다./사진=이효태


출렁출렁, 출렁이는 홍도 유람선에 바짝 몸을 의지한 채 태곳적 심연 속에 뿌리내린 바위들을 바라보았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듯 바위섬에 뚫린 구멍으로 바닷물은 연신 푸른 숨을 토해 뱉는다.

생물, 사물, 현상에서 끌어온 기암괴석의 이름은 어울렁더울렁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읽게 한다. 유람선 안의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홍도의 비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떠나왔지만 애초에 떠나온 곳은 마냥 여기인 것만 같다.
홍도 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유람선 탑승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남겨보자./사진=이효태
홍도 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유람선 탑승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남겨보자./사진=이효태
우리 신들의 고향, 기억나지 않는 애틋한 시간, 그리운 사람을 다시 재회할 그곳을 얼결에 본 듯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다시 또 오면 되지, 금방 또 만나면 되지. 그런 약속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휴대전화에 풍경과 풍경 속의 자신을 남기고, 또 남기느라 유람선의 열기는 2시간여 동안 쉬 가라앉지 않는다.
2구마을, 해발 89m에 위치한 홍도등대./사진=이효태
2구마을, 해발 89m에 위치한 홍도등대./사진=이효태
홍도 유람선을 타고 무려 33가지 비경을 만나는 동안 승무원의 구수하고도 알뜰한 설명은 적재적소에서 이뤄진다.


“홍도가 목포에서는 133.2km, 흑산도에서는 22km 떨어져 있고, 해안선의 길이는 20.8km에 이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으로 천연기념물이지요. 해가 질 때 홍도는 섬 전체가 붉게 보인다고 해서 붉을 홍(紅), 섬 도(島) 자를 써서 홍도라고 한답니다.
홍도 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유람선 탑승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남겨보자./사진=이효태
홍도 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유람선 탑승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남겨보자./사진=이효태
홍도는 1구, 2구 마을이 있는데 서로는 산을 넘어 왕래하거나 배를 이용해야 하지요. 유람선을 타면 자연스럽게 두 개 마을을 다 둘러보게 된답니다. 자, 홍도 10경 중 첫 번째인 남문바위가 나타납니다. TV에서 애국가를 들려줄 때 나오는 첫 장면에도 등장한 비경이랍니다. 여기서는 기념사진 촬영 시간을 넉넉히 드리니까 멋진 사진들 남기세요.”
애국가 방송에 나왔던 이 바위의 이름은 ‘남문바위’다/사진=이효태
애국가 방송에 나왔던 이 바위의 이름은 ‘남문바위’다/사진=이효태
처음에는 하나의 바위였을 거대한 암석은 무수한 시간과 파도에 쪼개져 작은 구멍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홍도 남쪽의 문이라 불릴 만한 남문바위, 작은 배가 드나들어도 될 정도로 커다란 석문을 통과하면 소원성취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유람선을 향해 손 흔들어주는 강태공./사진=이효태
유람선을 향해 손 흔들어주는 강태공./사진=이효태
이어서 실금리굴, 석화굴, 탑섬, 만물상, 슬픈여(일곱형제바위), 부부탑, 독립문, 거북바위, 공작새바위의 홍도 10경 안에는 탕건바위, 병풍바위, 원숭이바위, 종바위라 불리는 암석들이 중간중간 포개어 있다. 홍도 유람선은 짧지 않은 2시간 30분 동안 33경의 비경을 여유롭게 만나게 해준다.

7월에는 홍도원추리꽃 축제가 열린다. 그때가 되면 바닷물은 더욱 투명하고 파란색이 되는데, 바위섬 위로 노란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홍도와 필수코스, 흑산도

흑산도 권역에는 홍도를 비롯해 다물도, 대둔도, 영산도, 가거도가 흑산군도를 이루니 홍도에게 흑산도는 어버이 같은 섬이다. 흑산도는 해안선의 길이가 59.2km에 이르며 섬을 한 바퀴 에워싼 일주도로를 따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날 수 있다./사진=이효태
흑산도 권역에는 홍도를 비롯해 다물도, 대둔도, 영산도, 가거도가 흑산군도를 이루니 홍도에게 흑산도는 어버이 같은 섬이다. 흑산도는 해안선의 길이가 59.2km에 이르며 섬을 한 바퀴 에워싼 일주도로를 따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날 수 있다./사진=이효태
기자는 홍도와 흑산도에서 하루씩 총 2박 3일을 머물렀다. 어딜 먼저 여행할지는 크게 중요치 않으나 홍도 여행 시 빼놓을 수 없는 유람선이 오전 7시 30분, 오후 12시 30분 하루 2회 운항하니 계획을 잘 세워야 일정에 차질이 없을 것이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홍도로 가는 배는 하루 2회, 2시간 30분 걸린다. 홍도에서 흑산도까지는 30분이 소요된다. 뱃길 따라 반 시간이지만 흑산도와 홍도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흑산도 권역에 홍도를 비롯해 다물도, 대둔도, 영산도, 가거도가 흑산군도를 이루니 홍도에게 흑산도는 어버이 같은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승선표를 끊을 때도 흑산도는 대흑산도로 표기된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를 따라 올라가면 상라봉 전망대가 자리한다./사진=이효태
‘흑산도아가씨 노래비’를 따라 올라가면 상라봉 전망대가 자리한다./사진=이효태
해안선의 길이가 59.2km에 이르는 흑산도 여행의 백미는 섬을 한 바퀴 에워싼 일주도로에서 경험할 수 있다. 1984년 착공을 시작한 일주도로는 무려 27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흑산도의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여행지로서도 그 매력을 온전히 담아야 하니 공사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가수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를 기념하는 조형물./사진=이효태
가수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를 기념하는 조형물./사진=이효태
흑산도와 홍도는 여행사를 통해 단체 여행에 나서는 이들이 많은데, 한적하게 개별 여행을 하고 싶다면 관광택시를 눈여겨보자. 흑산도항여객터미널에는 관광객을 기다리는 택시가 상시 대기 중이다. 기사님은 그 누구보다 흑산도에 정통한 현지인이자 최고의 여행가이드다. 25.4km에 이르는 일주도로는 흑산도 핫스폿들이 길과 길,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자리해 흑산도 여행의 처음이자 끝이 된다.
상라봉전망대에서 바라본 흑산도. 가까이 흑산도항, 여객터미널, 빨간 건물의 흑산문화관광호텔이 보인다./사진=이효태
상라봉전망대에서 바라본 흑산도. 가까이 흑산도항, 여객터미널, 빨간 건물의 흑산문화관광호텔이 보인다./사진=이효태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 흑산도 아가씨

쾌속선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릴 때도, 일주대로 높다란 12굽이길 언덕에도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엘리제의 여왕, 가수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다. 1965년 영화 <흑산도 아가씨>의 배경음악으로 흑산도가 인구에 회자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덕분에 흑산도에서 이미자 선생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진=이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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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위풍당당히 세워진 상라봉 전망대에서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흑산도의 비경이 감탄을 일으킨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대장도, 소장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내영산도, 외영산도가 해무 속에 그림처럼 너울거린다.
사진=이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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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인 흑산도의 역사는 유배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사리마을에 조성된 유배문화공원은 흑산도에서 15년간 유배 생활을 한 조선 후기 실학자인 손암 정약전을 기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우이도와 흑산도를 오가며 바다생물에 대한 <자산어보>를 집필했으니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전문서적이다.

홍도에서 먹고 자고 - 민박집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인 홍도에서는 집 하 나 고치는 것도 큰일이 된다. 도심에서는 모텔, 호텔 등이 흔하지만 홍도에서는 민박집이 대표적인 숙박시설이다. 특히 개별 여행객이라면 홍도에 오기 전 민박집을 예약하는 건 필수 중의 필수. 먹고 자는 그 모든 것을 한곳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사진=이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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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에 따르면 비수기, 성수기 할 것 없이 숙박료는 비슷한 수준이며, 양식을 하지 않는 곳이라 그 어디보다 싱싱하고 맛 좋은 횟감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단다. 다른 제품은 배로 들여오기에 좀 더 비쌀 수 있지만, 이왕이면 크고 작은 소비 모두 섬 안에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 보고 싶은 것은 우리 각자가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으로 지켜나가야 하니까 말이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1길 10-2, 섬사랑횟집

흑산도에서 먹고 자고 - 호텔&홍탁

잠자리에 특히나 예민한 여행객이라면 흑산문화관광호텔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객실은 침대가 있는 2인실부터 한실, 패밀리룸까지 다양하고 펜션도 운영한다. 펜션 바로 옆에는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흑산성당이 자리해 천주교와 관련한 흑산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밤바다의 노래를 자장가 삼아 숙면을 취한 뒤에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맛있는 조식까지 음미하자. 숙박객을 위해 흑산도항여객터미널까지 차량 운행도 하니 마지막 서비스까지 완벽하다.
사진=이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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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흑산면 흑산일주로 180-19, 흑산문화관광호텔

흑산도에 와서 아니 맛볼 수 없는 것이 홍탁이다. 흑산도항여객터미널 일대에 흑산시장과 전문식당이 있어 어딜 들어가든 맛은 보장이다. 여행객들은 주로 삭힌 흑산도 홍어를 맛보길 원하기에 사시사철 진귀한 맛을 볼 수 있다. 사장님이 직접 만든 걸쭉한 탁주에 그 이름도 유명한 흑산도 홍어 한 점, 버킷리스트를 채운다.
사진=이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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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흑산면 예리2길 45-2, 태양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