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힐리언스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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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닮은 나를 찾는 여정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이 지겨울 때,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에 눈이 아플 때, 밤 낮 없는 소음에 창문을 꼭꼭 닫게 될 때. 훌쩍 떠나고 싶다. 있는 그대로 나를 품어주는 곳, 숲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라는 생각이 든 어느 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강원도 홍천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힐리언스 선마을’. 20년간 자연의학을 연구한 이시형 박사가 국내 여러 기업과 손잡고 만든 웰에이징 힐링 리조트다. '목적지 부근입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안내 음성과 함께 내비게이션 화면이 갈피를 못 잡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어, 이거 왜 이래?”
비움의 미학,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힐리언스 전체는 통신망이 잡히지 않는 디지털 디톡스 공간으로 운영된다. 입촌도 채 하기 전부터 내비게이션에서 변화가 감지된 걸 보면 효과는 확실했다. 주차장에서 웰컴센터가 있는 가을동까지 걸어가는 5분 남짓한 시간, 스마트폰 신호가 잡히지 않자 슬슬 불안해진다. 이 타의적 불편함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숙소는 크게 정원동과 숲속동으로 나뉜다. 건물까지 가는 길이 가팔라 숨이 차오른다. 이 박사가 헬리콥터를 타고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부지라는 직원의 설명이 이해된다. 엘리베이터가 따로 없어 두 다리만이 유일한 이동 수단이다. 객실 문을 열자 널찍한 테라스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종자산 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테라스 끝에 서서 휴대폰을 높이 치켜드니 신호가 약하게 한 칸 잡힌다. 도통 말을 듣지 않는 메신저를 들락날락하며 바깥세상과 소통하려 애쓰다 포기했다. 유일하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 ‘비워크 힐리언스’도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의도된 불편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먹고, 움직이고, 비우고, 흘러가라
힐리언스의 기본 패키지는 ‘쉼스테이’다. 평일 기준 30만 원 내외의 가격에 숙박은 물론 조식과 석식, 트레킹·명상 등 데일리 프로그램, 각종 부대시설을 누릴 수 있다. 객실 제공만으로는 힐리언스가 추구하는 가치를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는 이 박사의 신념이 담겼다. 식사부터 다르다. 힐리언스가 내세우는 식습관의 기본은 소식다동(小食多動),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다. 싱싱한 채소와 품질 좋은 산나물, 달걀, 닭고기 등 식이섬유와 단백질 위주의 식단이 준비된다.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저염식이지만 심심하지 않다. 테이블 위의 모래시계가 떨어지는 30분에 맞춰 천천히 식사했다. 한 숟갈에 서른 번 이상 꼭꼭 씹어 식판을 뚝딱 비웠다. 배를 채웠으니 움직일 차례다.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 중 숲 테라피를 택했다.
빗줄기가 굵어진 탓에 짧게 산책한 뒤 ‘숲속 유르트’라는 공간에 매트를 깔았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이완했다. 땅에 등을 대고 누우니 빗방울 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들숨마다 피톤치드가 폐 가득 채워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하다 깜빡 잠들었다. 이 곳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혼란스러웠다. 휴대폰 대신 지도를 들고 마을을 천천히 살펴봤다. 홀린 듯 숲속 동굴 와인바 ‘선향 동굴’로 향했다. OTT를 보며 혼술하는 습관도 여기선 버려야 한다. 대신 통창으로 보이는 숲과 별을 바라보며 가볍게 와인 한 잔을 즐겼다. 애써 무엇을 채우려 하지 않으니 절로 마음이 비워지고 시간은 유유자적 흘렀다.
불편함, 습관이 되다
알람이 미처 울리기 전 눈이 번쩍 뜨였다. 오랜만에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신선한 샐러드와 갓 구운 식빵, 요구르트로 간단한 식사를 했다.비가 그친 트레킹 길에서는 산책 나온 반려견 가족을 만났다. 힐리언스는 반려견 동반 객실 ‘힐리펫룸’과 전용 쉼터 등을 갖춰 반려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 가공되지 않은 대자연 곳곳에서 토끼, 고양이 같은 동물도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 명상 프로그램을 듣고 유료로 운영되는 목공방 체험을 신청했다. 목공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하나뿐인 트레이 만들기에 나섰다. 쉴 새 없이 톱질·사포질을 하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평소 같으면 SNS에 사진을 찍어 올리느라 정신없었을 순간이 온전한 성취감으로 바뀌어 다가왔다.
선마을을 벗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울리는 휴대폰을 보며 자연에 바랐다. 일상이 버겁게 느껴질 때, 무위(無爲)의 삶이 그리워질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