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리아나 제도, 내 생애 가장 눈부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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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바다와 현란한 석양을 만나는, 섬에서의 하루를 오늘도 나는 그리워한다. 태평양의 가장 아름다운 섬들이 모여 사는 곳, 북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과 티니언, 로타에 대한 이야기다.
바다, 햇볕, 바람, 까무잡잡한 사람들, 미소. 섬나라들에 언제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섬나라를 좋아하는 이유들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휴양섬 중 하나인 사이판은 태평양의 가장 반짝이는 섬들이 밀집한 북마리아나 제도에 속한다. 그리고 사이판의 이웃 섬인 티니언과 로타까지, 이 3개의 섬이 북마리아나 제도를 대표하는 여행지다. 섬에만 가면 행복한 내가 어여쁜 섬들의 관광청 홍보 담당자가 되었다는 건 어찌보면 참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침, 점심, 저녁 내내 만나도 질릴 새가 없는 사이판, 티니언, 로타의 바다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물놀이만 하는 놀이터보단 마음의 안식처에 더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북마리아나 제도 내 모든 섬들을 매일 저녁 물들이는 붉은 노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바다들은 여행자를 유혹하는 명소이기 이전에 섬에 사는 이들의 쉼터이자 훌쩍 나가 노는 뒷마당이라는 걸, 매일같이 해변을 찾으며 알게 된 것이다.
제주도 면적의 16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사이판은 티니언, 로타에 비하면 큰형님 같은 섬이다. 이토록 아기자기한 규모의 섬들이라 나는 더 좋았다. 렌터카를 구해 해변 따라 이어지는 도로만 내달려도 머지않아 섬의 끄트머리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참 아늑하게 다가왔다.
끝에서 끝으로 향하는 드라이브 중간에도 잠시 멈춰 내려야 하는 아름다운 해변들이 자꾸 나타나니, 이보다 더 큰 섬이었다면 벅찼을 것 같다.
사이판의 바다를 누리는 4가지 방법
사이판 구석구석을 다녀보며 알게 된 사실은 이 섬의 바다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적어도 4가지는 된다는 것이었다. 그중 첫 번째는 ‘마나가하섬’, ‘오비안비치’, ‘마이크로비치’처럼 고운 모래사장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해수욕장을 찾는 것이다.특히 사이판 시내에서 배로 15분이면 도착하는 마나가하섬은 소정의 입장료를 내고 머무를 수 있는, 보다 특별한 휴식처다. 휴양의 낙원인 사이판에서만 찾을 수 있는 해수욕의 아지트와 같달까. 섬 주변의 바다는 놀랄 만큼 투명하고 야트막해서 수영 잘하는 친구, 못하는 친구들이 함께 어우러져 놀기에 참 좋았다. 마나가하섬이 바다 건너로 내다보이는 마이크로비치도 사이판 내 대표적인 해변 중 하나다. 1km 이상 이어지는 해변의 잔잔한 물결이 석양이 찾아올 때 가장 좋은 반사판 역할을 해준다.
마이크로비치가 모래사장에 걸터앉아 있기에 좋았다면, 오비안비치는 물속을 구경하기에 좋다. 비교적 얕은 바다에서부터 산호초와 열대어들을 볼 수 있어 스노클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물속 이야기가 나오면 빠질 수 없는 장소가 사이판에 또 있다. 바로 세계적인 다이빙 명소 ‘그로토’. 물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세 개의 터널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는 장관은 직접 본 사람만 안다는 감동을 선사한다.
그다음 세 번째로는 ‘버드 아일랜드’, ‘포비든 아일랜드’와 같이 사이판 곁에 붙어 있는 작고 소중한 돌섬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다. 사이판 북쪽의 작은 석회암 섬인 버드 아일랜드는 새들이 둥지를 틀기에 좋은 작은 구멍들이 많아 멀리 전망대에서 바라봐도 그 주변을 맴도는 새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포비든 아일랜드’는 그 이름부터 탐험가 본능을 자극하는 섬이었다. 사이판 남동부 해안가에서 바로 보이는 이 섬은 희귀 동식물 자연보호구역으로, 입장이 허용되는 특정 기간에만 섬 내에서의 수영과 트레킹이 가능하다.
비록 이 섬에 입장이 가능한 기간에 사이판을 방문하는 행운을 거머쥐진 못했지만, 비포장도로를 달린 끝에 바다 건너 마주한 포비든 아일랜드의 자태는 지극히 신비로웠다.
사이판의 바다를 누리는 방법 그 마지막은 ‘만세절벽’ 또는 ‘반자이 클리프’라 불리는 사이판 최북단의 절벽 앞 평원에 걸터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일이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바닷바람을 제외한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초원에 잠시 앉아 있다보면, 나 스스로에게 이런 시간이 얼마나 필요했는지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티니언에서 투명한 바다로 다이빙
티니언은 사이판에서 현지 항공사 스타마리아나스에어를 이용해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정겨운 이웃 섬이다. 북마리아나 제도에서 사이판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아기자기한 섬 마을을 거닐 수 있기도 한 곳이다. 이곳에선 차를 빌려 섬 중심부를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를 달리며 여정을 시작했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땐 티니언 주민들이 가장 애정한다는 ‘타가비치’로 나가 동네 아이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을 환호하며 지켜봤다.해변의 빛깔이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청량해서, 그 위에서 카약을 타면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에 취할 수 있다. 낮에 시간이 남으면 섬 북동부의 ‘블루홀’을 찾아가 바다와 암석이 만들어낸 천연 분수를 감상했다.
파도로 침식된 암석의 구멍으로 파도가 물줄기를 뿜어내는데 그 모습과 소리가 웅장하다. 볕 좋은 날이면 물줄기들이 뽀얀 무지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티니언에서 노을의 시간이 찾아올 때면 나는 주저 없이 다시 타가비치로 발길을 돌렸다. 온 하늘과 바다가 수만 가지 색으로 물들며 그 속의 사람들을 까맣게 지워주는 마법의 시간을 놓치는 건, 섬 여행자에게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자연이 주인인 그 섬, 로타
사이판에서 스타마리아나스에어를 통해 30분의 비행이면 닿는 섬, 로타. 이곳은 사람보다 자연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춰져 있는 섬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곳은 로타 중심부에 위치한 국제공항 주변과 섬 서쪽의 ‘송송빌리지’가 전부인 듯한 목가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다. 로타의 상징과도 같은 낮고 넓은 ‘웨딩케이크산’이 그대로 내다보이는 송송빌리지에서 마을 산책을 마치고는 로타를 방문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를 해소하러 나섰다. ‘스위밍 홀’이라 불리는 이 천연 수영장은 섬 북쪽 해안선에 생겨난 자연의 보고다.파도로 해안가 암초들이 침식되며 땅 가까이로 바닷물이 들어와 얕은 풀이 형성된 것이다. 주변의 우거진 열대 식물들과 어우러진 스위밍 홀의 모습은 보면서도 믿기 힘든 장관을 그려낸다.
로타에서 주민들이 주로 찾는 해변인 테테토비치’와 가깝게 위치하기에 이 두 곳을 모두 찾으며 하루를 온통 해수욕으로 장식해도 좋겠다.
해안 따라 로타의 오프로드를 달리다가 대자연이 그린 그림을 탁 트인 시야로 감상하고 싶어진다면 ‘버드 생추어리’와 ‘포나 포인트’를 목적지로 삼아보자. 숲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새소리가 흘러나오는 섬 로타의 야생조류보호구역인 버드 생추어리의 전망대에선 가장 극명한 초록색과 파란색의 대비를 두 눈에 담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