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충북의 백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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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백년가게와 백년소공인
사과로 만든 한과부터 오래된 서점까지
동네 사람 다 아는 명물 떡집, '다리깨방앗간'
‘다리깨방앗간’을 찾아가는데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잘못 찍었는지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 밖에서 참깨를 말리고 있던 동네 주민분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기 방앗간이 있다는데…”라고 여쭤보니 “아, 저 다리께 쪽으로 한번 가보슈”라고 알려주셨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찾아간 그곳에 정말로 ‘다리깨방앗간’이 있어서 어찌나 반가웠던지.김태현 대표의 할아버지 때부터 해온 방앗간은 무려 50여 년이 됐다. 사업자를 등록하기도 훨씬 전이니, 서류보다 동네 주민들이 기억하는 방앗간의 역사가 긴 셈이다. 다리깨방앗간이라는 이름도 방앗간이 생긴 다음에 방앗간 위치를 묻는(우리 취재진 같은) 이들에게 “저 다리께쯤 가면 있어요”라고 하도 그래서 아예 이름이 다리깨방앗간이 돼버렸다.
지금은 방앗간 시설과 떡을 생산하는 제조시설을 분리해서 운영하는 엄연한 제조회사다. 방앗간에는 여전히 동네 주민들이 기름을 짜고, 고춧가루를 빻아가려고 아침부터 모여든다. 그 옆 떡 제조시설장에서는 전국의 소비자에게로 갈 맛있는 떡이 이른 아침부터 쪄지고, 고물이 묻히고, 썰리고, 포장된다.
다리깨방앗간은 옛날부터 맛있게 떡을 만들던 방식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요새 찰떡은 쌀을 쪄서 썰고 겉에만 콩하고 밤을 얹어 다시 찌거든요. 근데 저희는 처음부터 서리태, 밤, 호박 등을 한데 섞어서 쪄요. 이게 더 맛있는 방법인데 당연히 만들기 더 힘들죠.”
다리깨방앗간은 옛 떡맛을 기억하는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젊은층까지 사로잡았다.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해도 1만을 넘는다. 전국의 플리마켓에 나가 열심히 홍보하고 다닌 덕분이다. 한번 이곳의 떡을 맛본 이들은 이제 온라인으로 전국 각지에서 주문을 한다.
어머니와 김태현 대표, 그리고 그의 아내 김상미 씨 셋이 똘똘 뭉쳐 만드는 단호박인절미를 만드는 풍경, 방앗간 위치도 못 찾았던 초보 손님인 주제에 어느새 이 풍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세월 방앗간을 지켜주어서 고맙다고, 주제넘게 말하고 싶어진다.
▶충북 음성군 대소면 오태로 107-2
어머니 손맛 며느리가 이어가는 '느티나무집'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가게 앞을 지키고 있는 곳, ‘느티나무집’은 백곡저수지 인근에 자리한 민물고기매운탕과 닭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백년가게다. 정식으로 사업자를 낸 건 1989년, 그러나 그보다 10여 년 전부터 이미 김윤호 대표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는 매운탕을 솜씨 좋게 차려내는 집으로 명성이 자자했다.김윤호 대표가 가게를 물려받은 지 10년 정도 시간이 흘렀고, 이제 주방의 음식 맛을 좌우하는 것은 그의 아내다. 김치와 고추장을 직접 담가 어머니의 맛을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단다.
매운탕이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푸짐하기에 이렇게 양이 많아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김윤호 대표는 “어머니 손이 워낙 커서…”라며 장난 섞인 푸념으로 대답한다. 오래된 단골들이 혹여 전보다 양이 적다고 느낄까 싶어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넣는다. 물론 손님들의 타박보다 손 큰 어머니의 불호령이 더 무서웠다고.
정 많고 손맛 좋은 어머니는 이제 매장 안의 작은 액자 속에서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계신다. 여름이면 각종 단체 모임의 식사 예약이 물밀듯 밀려오지만 의외로 성수기는 겨울이라고 한다. 겨울철에 저수지에서 빙어가 많이 잡혀서 얼음낚시를 즐기러 찾아오는 낙시꾼이 제법 많은데, 그 낚시꾼들이 빙어가 잡힐 때까지 못 참고 느티나무집으로 오는 것이다.
“겨울철에 저수지가 허허벌판이라 엄청 추워요. 빙어 좀 낚아보려고 왔다가 에잇, 그냥 사먹고 말자, 하고 여기로 오시죠. 아쉬운 마음 달래시도록 푸짐하게 드립니다.”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먹는 메기매운탕의 개운하고 담백한 맛에 빙어를 못 낚은 슬픔을 기억이나 할는지? 좋다! 올겨울엔 빙어 잡으러 백곡저수지에 가보자! 아무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얼큰한 매운탕이 자꾸 생각나 금세 느티나무집으로 향하겠지만.
▶충북 진천군 진천읍 백곡로 1253
충주 대표 브랜드, '충주사과한과'
이순영 대표가 남편의 과수원에서 나는 사과를 활용해 소일거리로 한과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세운 가게가 어느새 충주를 대표하는 법인으로 성장했다. 정식 명칭인 ‘농업회사법인 충주사과한과(주)’는 그가 1992년에 시작한 한과집이 전신으로 지금의 집터에 공장을 짓고 체험농장을 꾸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현재는 한과 제조 비법을 가지고 있는 이 대표가 공장을 운영하고, 아들 박종근 이사가 이를 도와 전반적인 운영과 영업을 맡으며, 며느리 김미정 실장이 교육농장에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농장에서 진행하는 체험 활동은 하루에도 몇 팀씩 예약하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이날도 앞서 왔던 유치원 아이들의 고구마 캐기 체험 뒷정리가 끝나기 무섭게 단란한 네 가족이 사과한과 만들기 체험을 하러 농장을 찾았다.
쉴 틈 없이 바쁜 이들의 하루 일과가 눈에 선했다. 한과를 만들려면 찹쌀을 열흘 정도 발효시키고, 빻고, 찌고, 자르고, 다시 채반에 올려 말리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이 엄청나게 느리고 길다. 맛있는 한국의 모든 음식은 발효 과정이 있다고 말하는 이순영 대표. 느리고 긴 그 시간을 뚝심 있게 걸어온 그에겐 지금부터가 진국의 시간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