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장 가는 길] 금풍양조장엔 금풍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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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소소한 만남도 내게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살면서 정작 인연은 놓치고 옷깃만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번 만남을 통해 되돌아봤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계신가요?)김포에서도 멀잖은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다다르자 도로변에는 작고 낮은 점포들, 평야처럼 넓은 주차장, 가방을 메고 느리게 걷는 아이, 크고 작은 정미소가 눈에 띈다. 평화로운 풍경 속에 정미소가 눈에 들어온 건 강화가 쌀, 일명 ‘강화섬쌀’로 유명하고, 오늘의 목적지가 그 쌀로 술 빚는 양조장이기 때문이다.
<금풍양조장> 일제강점기에 지은 양조장 건물은 멀리에서 찾아온 손님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기다란 목조건물 중앙에는 박공지붕의 주출입구가 도드라져 운치가 있다. 아마도 물건을 운반할 때 비를 피할 용도로 이런 출입문을 만든 듯 하다. 무수한 사람이 드나든 흔적도 시멘트 계단참에 남아있다. “안녕. 금풍아.”
금풍양조장의 마스코트 금풍이가 계단참에 앉아 나른한 표정으로 손님을 쳐다본다. 지난해 1월 tvN STORY의 <고독한 훈련사>에 금풍양조장과 반려견 금풍이가 전파를 타며 많은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제는 사람 손이 귀찮아진 금풍이는 내내 심드렁한 표정이더니 양태석 대표가 오고서야 폴짝폴짝 생기가 돈다. “할어버지께서 강화에서 정미소를 크게 하셨어요. 양조사업에도 관심을 두신 터라 1969년 지금의 금풍양조를 인수하셨지요. 양조장의 정확한 건축일은 알 수 없지만, 서류(건축물대장)에 1931년으로 등록(시대 정황 상 그 이전일 수도 있다)되었고, 1938년에는 인천주류품평회에서 금풍양조의 제품이 우등상을 받기도 했어요. 향후 2030년을 금풍양조의 100주년 되는 해로 기념하려고 합니다." 양태석 대표는 할아버지 양환탁 씨, 아버지 양재형 씨에 이어 3대째 금풍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양조장은 나의 운명’처럼 보이지만, 대학 졸업 후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는 전혀 다른 분야에 종사했다. 2011년~2020년, 10년 동안 금풍양조장은 옛 주인을 잃은 채 잊혀지는 듯도 했다. “마케팅 분야에 오래 종사하며 시야가 넓어지고, 여러 경험이 쌓이다 보니 나만의 F&B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이 낡고, 오래된 양조장이었어요. 무심코 지나치면 양조장인지, 무엇인지 쓸모를 알 수 없이 방치된 곳이었죠.” 그는 제품을 여러 곳에 유통하는 것보다 플랫폼으로서 양조장의 가치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직장인으로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은퇴를 앞두고 나만의 사업을 꿈꾸고 있다면, 그의 자세에서 어떤 영감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금풍양조장은 100여 년 시간의 가치를 지닌 건축물, 우연히 만나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금풍이, 친환경 강화쌀로 빚은 술을 맛보러 오는 곳이죠. 유통 판로를 넓히는 건 아직까지 크게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아요. 손님이 기꺼이 오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게 우선이에요. 전통주 사업을 하려는데 유통은 어떻게 하냐고 묻는 분도 많아요. 저는 유통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우리 양조장만의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려요.” 양태석 대표의 말에 “당신에게는 이러한 양조장이 있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오지만, 차분히 둘러본 금풍양조장의 내면은 달랐다. 2019년부터 본격적인 양조장 운영을 앞두고 동네에 떠돌던 금풍이가 들어왔다. 하루, 이틀이면 제 갈 길을 가려니 했던 금풍이는 양조장을 새로운 집으로 여겼다. 그렇게 금풍이를 반려견으로 받아들인 양태석 대표는 금풍이 덕분에 TV에도 소개되었다. 방송 후 약 2개월 손님들이 파도치듯 찾아왔다. “금풍이에게 보은이라도 하는 것 같아요. 양조장에 개가 있는 건 봤지만, 그 개로 굿즈까지 만든 곳은 처음봐요.” 기자의 말에 양 대표가 웃으며 “보은을 해야죠. 금풍이를 보려고 찾아오는 손님도 얼마나 많은데요. 얘가 복덩이에요.”라고 전했다. 사람들이 반문한 오랜 역사를 지닌 즉, 레트로 테마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건축물은 누구나 가질 수 없지만, 누구나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길 수는 있는 것이다. 나만의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저희 제품은 강화도 친환경 무농약 쌀과 온수리 지하수로 빚어요. 친환경 강화쌀로만 술을 빚는 곳은 흔히 찾아볼 수 없죠. 그만큼 프리미엄, 고급스러움을 지향하고자 했어요. 한 달에 3000여 병밖에 만들지 않는데 찾아주시는 분들께 판매하는 걸로 충분한 양이라고 생각해요.” 기자의 셈법으로는 3000병이 적지 않은 수 같은데, 양조장을 막상 방문하면 술 한 병 이상을 아니 사갈 수 없는 것이다. 손님들은 대표 제품을 무료로 시음하며 이양주니 덧술이니 하는 레시피, 양조장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곁들여 듣는다. 알면 알수록 구미가 당기는 데다 구매하면, 쌀 포대에 담아주는 전통주는 예사롭지 않다. 밑술에 덧술을 더해 이양주로 방식으로 만든 금풍양조의 술은 탄산 없이 부드럽고, 쫀쫀한 맛이 특징이다. 대표 제품인 금풍양조는 알코올 함량 6.9%로 양조장을 인수한 1969년을 기념했다. 알코올 함량에 따라 블랙(9.6%), 인삼을 넣은 그린(9.6%), 골드(13%)가 있고, 최근에는 강화 군화인 진달래, 인천 시화인 장미로 청을 내어 만든 진달래 막걸리도 눈에 띈다. 진달래 막걸리는 판매는 안 하고, 시음만 하는데 라벨을 금풍이가 장식했다. 금풍양조장은 왕겨를 사용해 건축한 국실의 복원 공사와 증자한 밀가루를 말리던 2층 공간의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간 공간에는 양조장의 근현대문화유산이 빛바랜 보물상자처럼 남아있다. 막걸리를 발효한 커다란 항아리, 세월에 바랜 상표, 누룩틀, 태극기, 수많은 상패까지…. 지난 세월이 맞이할 새로운 시간,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이야기가 삐그덕, 삐그덕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오겠지. 우리도 이처럼 ‘나’를 바탕에 두고 새 이야기를 덧칠하리. 나만의 보물 같은 양조장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다음 [양조장 가는 길]에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