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고재 하회 한옥 호텔 전경. 자연과 한옥이 조화를 이룬다
락고재 하회 한옥 호텔 전경. 자연과 한옥이 조화를 이룬다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

안동역에 내려 하회마을로 향하는 길. 자동차 도로 위에 드리워진 커다란 현판이 눈길을 끈다. 유교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곳이자, 전통과 예절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인 안동을 이만큼 잘 설명한 문장이 있을까.
완공까지 15년, 장인정신으로 지은 한옥 호텔에 가다
최근 문을 연 락고재 하회 한옥 호텔은 이러한 안동에 숨 쉬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을 기획한 이는 ‘한옥 호텔’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안영환 회장. 한옥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그는 서울 북촌한옥마을에 락고재 서울, 안동 하회마을 내 락고재 초가 별관을 운영하던 노하우를 쏟아부었다.
완공까지 15년, 장인정신으로 지은 한옥 호텔에 가다
그는 한옥은 단지 건축물이 아니라 후대에 물려줄 문화유산이자 정신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건축 방법부터 철저히 전통 방식을 고수했다. 이를 위해 안동에 한옥 건축학원을 열고 목수를 직접 교육했다. 이렇게 길러낸 대목수만 80여 명. 이들은 정통 방식으로 기와 하나, 벽돌 하나를 쌓아 올렸다.

재료도 까다롭게 골랐다. 목재는 경북 울진과 강원 평창에서 공수했다. 기와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위해 일부러 색이 균일하지 않은 불량 기와를 섞어서 사용했다. 장인정신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정성이다. 한옥 호텔이 완공까지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까닭이다.
완공까지 15년, 장인정신으로 지은 한옥 호텔에 가다
객실 수는 총 20여 개. 모두 독채 형식이다. 저마다 20여 채의 한옥이 조화를 이뤄 자리한 모습이 또 하나의 하회마을에 들어선 듯하다. 한옥 사이를 거닐다 보면 남다른 ‘격’을 자랑하는 정자가 눈에 띈다. 창덕궁 후원의 정자인 애련정을 그대로 본떠 만든 것이다.

이는 왕과 왕비가 수행비서 없이 단둘이 이용했던 정자로, 아기자기한 색감과 마감이 돋보인다. 이 밖에도 창덕궁의 부용정, 관람정, 연경당, 낙 선재까지 궁궐 안의 건축물을 고스란히 옮겨 둔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한옥만의 정겨움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객실
한옥만의 정겨움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객실
객실 안에 들어서면 한옥 특유의 포근함이 느껴진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곳곳에 걸린 작품들. 도자기, 그림, 서예까지 안 회장이 오랜 시간을 걸쳐 수집한 고미술품이 가득하다. 영조의 친필, 가야시대 그릇 등 희귀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창문을 여니 한옥과 정원이 작품처럼 펼쳐진다.
스튜디오 스위트 객실의 '차경'
스튜디오 스위트 객실의 '차경'
창문을 액자로, 바깥의 풍경을 액자 속의 그림으로 여긴 한옥만의 철학인 ‘차경(借景)’이다. 락고재에서는 완벽한 차경을 완성하기 위해 정교한 노력을 기울였다. 나무를 심는 각 도부터 독채끼리의 거리까지 계산했다.
'선비의 방'다운 운치가 느껴지는 객실
'선비의 방'다운 운치가 느껴지는 객실
덕분에 창밖의 요소들은 따로 또 같이 조화를 이룬다. 각 건물의 기와 끝 선은 하나의 곡선처럼 어우러지고, 저 멀리 너울지는 산의 봉우리마저도 수묵화의 한 장면 같다.

락고재를 거닐다 보면 커다란 흑색 비석을 만날 수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명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했던 ‘모노리스’를 본뜬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 비석은 생명의 진화를 다루고, 미래와의 연결을 나타내는 초월적인 도구로 등장한다. 한옥의 진화를 꿈꾸고, 한옥이라는 우리 고유의 전통을 미래 세대에게 전하겠다는 건축주의 포부가 담겨있는 공간이다.
객실 곳곳에는 안영환 회장이 수집한 고미술품이 놓여 있다
객실 곳곳에는 안영환 회장이 수집한 고미술품이 놓여 있다
한옥에서의 시간은 느긋하게 흘러간다. 밤이 내려앉으면 고즈넉함은 배가 된다. 도시에서는 환한 조명으로 좀처럼 만날 수 없던 오롯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개구리와 풀벌레 소리가 BGM처럼 밤을 장식한다.


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una.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