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난 11월 APEC 정상회의가 열린 페루 수도 리마에서 신라 천년의 도읍지 경주의 이름이 불렸다. 2025년 APEC(에이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개최 도시로 경주가 선정됐기 때문. 이번 에이펙 정상회의는 무려 2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다시 열리는 국제행사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한국과 세계를 잇는 가교가 될 경주의 풍경을 미리 들여다봤다.
황남대총과 목련이 어우러진 대릉원 포토존. 사진=도진영
황남대총과 목련이 어우러진 대릉원 포토존. 사진=도진영

세계를 품다

지난 6월, 경주 전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APEC 정상회의가 내년 경북 경주에서 개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1989년 창립된 APEC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 협력체로, 한국·미국·중국·일본·호주·싱가포르·멕시코·페루 등 21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매년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환태평양 연안 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다자 외교 행사다. 전 세계 경제리더가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행사인 만큼, 개최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2005년 부산에 이어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두 번째 APEC 정상회의라는 점도 고무적이다.
경주 도심 곳곳에 2025년 APEC 정상회담 개최를 알리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다. 사진=도진영
경주 도심 곳곳에 2025년 APEC 정상회담 개최를 알리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다. 사진=도진영
경제 활성화 효과 역시 톡톡할 전망이다. 경상북도는 2025년 APEC 정상회의가 전국적으로 1조 8000억 원이 넘는 경제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구경북연구원은 생산 유발 효과 9720억 원, 부가가치 창출 4654억 원, 취업 창출 효과 7908명으로 분석했다.
2025년 APEC 정상회담이 개최될 보문관광단지 전경. 2025년은 보문관광단지가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사진=도진영
2025년 APEC 정상회담이 개최될 보문관광단지 전경. 2025년은 보문관광단지가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사진=도진영
2025년 APEC 정상회의 주 무대는 국내 최초의 관광단지인 보문관광단지다. 1970년대 우리나라 관광 개발의 시작을 알린 출발점이자 경주 관광의 핵심이 되는 곳이다. 푸른 보문호를 중심으로 240만여 평의 드넓은 부지에 조성된 종합 관광휴양지로 호텔, 컨벤션센터, 레저·휴양시설 등이 들어서 여행객에게 필수 코스로 꼽힌다.

힐튼·라한셀렉트 등 5성급 호텔과 코모도·더케이 등 4성급 호텔을 비롯, 다양한 선택지의 숙박시설을 갖춰 경주 여행의 거점으로 삼기 좋다. 싱그러운 자연을 양껏 느끼고 싶다면 보문호를 따라 이어진 보문호반길을 추천한다. 시간에 따라 벚꽃, 단풍 등으로 옷을 갈아입는 가로수를 눈에 담으며 깊어가는 계절을 음미할 수 있다.
2025년 APEC 정상회담 주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사진=도진영
2025년 APEC 정상회담 주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사진=도진영
인근에는 2025년 APEC 정상회의 주회의장이 될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가 자리하고 있다. 전시·페스티벌·박람회·학술회의 등 각종 프로그램이 연중 펼쳐지는 경주 문화예술 인프라의 집합체로, 다채로운 행사·숙박·관광을 한곳에서 누릴 수 있다.
노랗게 가을이 내려앉은 대릉원 풍경. 사진=도진영
노랗게 가을이 내려앉은 대릉원 풍경. 사진=도진영

뚜벅뚜벅 천년의 길

경주에서라면 따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걸어도 좋다. 발 닿는 어느 곳이든 문화 유적지가 펼쳐진다. 황리단길을 따라 여행을 시작해 본다. 아기자기한 소품숍, 원두 향이 고소한 카페를 기웃거리며 10분가량 걷다 보면 경주 대릉원 정문이다.
대릉원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사진=도진영
대릉원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사진=도진영
대릉원은 노동동과 황남동 사이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을 통칭한다. 황남대총, 봉황대, 금관총, 천마총 등 크고 작은 신라시대 무덤 23기가 밀집돼 있다.

넓은 고분 공원 안에서도 유독 사랑받는 공간이 있으니, 황남대총 뒤쪽에 심어진 목련 앞이다. 부드러운 쌍곡선의 황남대총 사이 뽀얗게 핀 목련 앞은 대릉원에서 제일가는 포토존이다. 꽃이 피는 봄에만 붐비는 것은 아니다. 짙은 초록을 지나 빨간 단풍, 하얀 눈꽃으로 옷을 갈아입는 사계절 내내 카메라에 비경을 담는 이들로 줄이 길게 늘어선다.
경주의 랜드마크 첨성대. 신라시대 건립된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다. 사진=도진영
경주의 랜드마크 첨성대. 신라시대 건립된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다. 사진=도진영
대릉원 정문을 지나 길 하나만 건너면 첨성대가 너른 벌판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명실상부 경주의 랜드마크이자 국보다. 오후 햇살을 받은 첨성대는 유심히 들여다볼수록 신비롭다. 압도적인 규모는 아니지만, 위로 갈수록 오묘하게 좁아 드는 곡선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천년의 신비를 탐닉하듯 한참을 그 자리에 말없이 서 있는 이들도 여럿이다.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에 자리한 울창한 계림. 사진=도진영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에 자리한 울창한 계림. 사진=도진영
첨성대의 뒤편에 서면 또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 울창한 숲 하나가 존재감을 뽐낸다.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경주 계림이다.

신라 탈해왕 때 닭이 숲속에서 운 뒤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에 근거해 ‘닭이 운 수풀’이란 뜻의 이름이 붙었다. 한때 신라의 국호마저 계림이라 쓰일 정도로 유서 깊고 신성한 숲이다. 왕버들·느티나무·단풍나무 등 고목이 하늘을 가릴 듯 울창해 산책하기 좋고, 이른바 ‘사진발’도 잘 받는다.
한복을 입고 계림 일대를 산책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 사진=도진영
한복을 입고 계림 일대를 산책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 사진=도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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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랩
북적이는 황리단길에서 벗어나 잠시의 여유를 찾고 싶다면 이곳이 제격. 황리단길 시작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오버랩은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갖춘 카페다. 지하 1층은 미디어아트 전시관과 카페 공간으로, 지상 1층은 오롯이 커피를 위한 공간으로 쓰인다. 고소한 라테 위에 짭조름한 브라운치즈가 올라간 피스타치오 아몬드 펌이 대표 메뉴다.
(왼쪽부터) 아이리쉬 커피와 피스타치오 아몬드 펌. 사진=도진영
(왼쪽부터) 아이리쉬 커피와 피스타치오 아몬드 펌. 사진=도진영
박소윤 한경매거진 기자 park.soyoon@hankyung.com